문제의 방송인들 인사조치 안한 김혜련 사장 정체 24년 만에 드러나 ... 좌파 방송인들 비호한 방송국 사장도 좌파
김일성 사망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1994년 7일 9일자 호외(위 사진)와 7월 10일자 1면 머리기사.
‘뉴욕 라디오코리아’ 사장 출신 김혜련 씨,
한국 좌파단체 (사)민주평화노인회
(현 새시대노인회) 사무총장에 취임
오는 7월 8일은 ‘한민족의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 김일성이 죽은 지 29년째 되는 날이다.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은 이달 25일 예정된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묘향산에 위치한 '향산특각'에 머무르며 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시점으로부터 34시간이 흐른 7월 9일 정오, ‘조선중앙텔레비죤’은 김일성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한민국의 TV, 라디오 방송들은 오후부터 긴급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날 호외를 뿌렸으며 다음 날인 7월 10일 아침에는 1면 머리기사로 이 소식을 전했다.
7월 9일 오후, 한국의 방송들이 김일성 사망소식을 전할 때 뉴욕 한인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일광절약시간제(썸머타임)에 의해 한국과 13시간 시차가 있는 뉴욕의 7월 9일 오전. 맨해튼 파크 애브뉴(Park Ave.) 32가에 위치한 ‘AM1480 뉴욕 라디오코리아'(당시사장 김혜련/주파수 소유주: 인피니티 브로드캐스팅社)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일성 주석의 서거를 애도 한다”면서 라디오에서 북한 애국가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은금에 자원도 가득한/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반만년 오랜 역사에/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1절 가사)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온 세계 앞서 나가리/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한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길이 빛내세“(2절 가사)
북한 애국가를 아는 한인들은 이 방송을 듣고 기가 막혀 말을 잊었고, 이 노래를 모르는 청취자들은 ‘무슨 노래인가’ 의아해했다. 북한 애국가에 이어 장송곡 풍의 인민군가 한 곡이 더 흘러나왔다. 이 방송을 들은 한인 청취자들은 쇼킹 그 자체였다. 다수의 한인들이 방송국에 항의전화를 걸었음은 물론이다. 북한 애국가 등을 ‘겁 없이’ 틀어재낀 사람들은 호남출신의 좌파 방송인 J 씨(여·당시 37세·현재 뉴저지 거주)와 C 씨(당시 35세·현재 서울 거주)였다.
당시 J 씨는 아침방송 진행자 겸 제작부장 이었다. 또한 평소 J 씨와 정치적으로 교감하며 이날 J 씨를 부추긴 C 씨는 이 방송국의 보도부 소속 취재기자였다. 방송이 나가고 청취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하지만 방송국 내부는 벌집 쑤셔놓은 듯 난리가 났다. 특히 김모 보도부장이 두 사람을 상대로 불같이 화를 내며 분을 삭이질 못했다.
다른 직원들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방송국에 근무했던 A 씨는 “김혜련 사장 역시 두 사람을 상대로 화를 내긴 마찬가지 였다”면서 “하지만 김 사장이 이들에 대한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또한 이 사건이 다른 언론에 단 한 번도 보도되지 않은 것도 불가사의(不可思議)했다”며 “어떻게 남한 출신 이민자들이 듣는 방송에서 북한국가를 틀 수 있는지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이었다”고 전했다.
‘올드 타이머(Old Timer)’ 청취자들 가운데는 지금도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직도 당시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맨해튼 거주 김모(70)씨는 “난 그 때 한인 라디오에서 방송된 북한 애국가를 듣고 '이 방송국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방송사고가 공론화되지 않고 유야무야 끝난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94년 당시에는 뉴욕한인사회에서 활동하던 우파단체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면서 “지금처럼 우파단체들이 많았다면 방송국 앞에서 데모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라디오방송에서 북한 애국가를 듣고 경악했다”는 양모(67·뉴저지 에지워터)씨는 “내 군대 주특기가 ‘특수정보’인 까닭에 북한 애국가를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다”며 “이 노래를 듣자마자 입에서 욕부터 튀어나온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양 씨는 “나는 친북좌파들에게도 ‘빨갱이’란 말을 잘 안 쓰는 사람인데 당시에는 ‘방송국이 ‘빨갱이’들에게 장악 됐구나‘라고 생각했다”며 “문제의 J 씨가 그 이후에도 20년 넘게 아침 방송을 진행하는 것을 들으면서 뉴욕 한인방송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3년 세종문화회관 산하 기관인 서울시극단장에 취임 할 당시의 김혜련 씨(전 뉴욕 라디오코리아 사장). 현재 그는 한국에서 좌파단체인 새시대노인회(옛 민주평화노인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사장인 김혜련(75·현재 서울 거주)씨가 비록 화를 냈지만, 이들에 대해 별다른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점은 그 후 오래 동안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만든 부분이었다. 당시 한인사회는 김 씨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방송국에 대해 미주동포 청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항의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세월이 24년이 흘러서야 김 씨가 왜 J 씨와 C 씨를 상대로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문재인 정권 당시인 지난 2018년 있었다. 김 씨가 이해 3월 21일 출범한 한국의 좌파단체인 (사)민주평화노인회(이사장 김승균)에서 중추적인 역할인 사무총장 겸 이사를 맡았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노인회(현재 명칭 새시대노인회) 창립 닷새 전인 16일, 당시 자유한국당은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원천 무효화를 위한 집단행동에 나섰던 인사들을 포함한 좌파 노인단체의 출범에 대해 "어르신들조차 이념으로 쪼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8년 3월 21일 사단법인 민주평화노인회 창립대회가 열리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 단체 핵심역할인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혜련 씨.
자유한국당은 다음과 같은 요지로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노년층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노년층을 분열시키려고 획책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어르신들조차 좌우로 나뉘어 분열되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평화노인회는 자신들이 말하는 창립취지(사회갈등 극복)를 실천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즉각 출범을 취소하기 바란다"
당시 민주평화노인회의 이사장은 ‘사상계’ 책임편집인을 역임한 김승균 씨가 맡았으며 상임이사는 장영춘 통일시대평화포럼 이사장,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이 때문에 보수 색채가 짙은 대한노인회를 대체하기 위해 좌파세력이 ‘민주평화노인회’를 설립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단체가 얼마나 좌파세력의 집결지였는지는 훗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행동에서도 잘 알 수 있다. 2021년 8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중랑구갑) 의원이 ‘새시대노인회(민주평화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 했기 때문이다.
서 의원 뿐만 아니라 이 지원법안에 대해 정의당 강은미 의원(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 김두관(경남 양산시을)·김영배(서울 성북구갑)·문진석(충남 천안시갑)·양기대(경기 광명시을)·오영환(경기 의정부시갑)·임오경(경기 광명시갑)·장철민(대전 동구)·한병도(전북 익산시을) 의원 등 10명이 공동발의 했을 정도였다.
현재 김혜련 씨는 이런 조직의 핵심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결국 1994년 당시 뉴욕 라디오코리아 사장인 김 씨나 북한 애국가를 방송하며 문제를 일으킨 J 씨, C 씨나 모두 좌파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이 24년 만에 드러난 셈이다.
좌파 방송인들의 ‘뒷배’ 김혜련 씨가
운영하던 라디오코리아, 김영일 씨 이어
권영대 씨가 인수해 ‘AM930 라디오서울’로 출범
고려대 영문과(66학번)와 뉴욕대 대학원(NYU) 교육연극학과를 졸업한 김혜련 씨는 유명 방송작가 정하연(79)씨의 전 부인이다. 그는 지난 1985년 도미(渡美) 후 18년간 뉴저지에 살다 2003년 11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인물이다. 김 씨는 귀국 후 한국여성연극인협의회 이사를 거쳐 2013년에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기관인 서울시극단의 단장을 역임했다.
그는 뉴저지 거주시절 뉴욕한인회 문화부장, 한인 실험극단 ‘실크로드 플레이하우스’ 대표 겸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김 씨는 1990년 뉴욕 라디오코리아를 세웠으나 동업관계였던 김영일 씨와의 소송에서 패하고 1995년 방송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 후 김 씨는 한국어 위성방송 ‘채널코리아’를 운영하다 이마저도 경영악화로 접고 한국으로 귀국 했다.
‘라디오코리아’란 회사명은 원래 ‘LA 라디오코리아’가 원조(元祖)이다. 하지만 가수 이장희 씨와 함께 LA 라디오코리아를 설립한 김병우 씨가 김혜련 씨의 5촌 당숙이었기에 김혜련 씨가 경영하던 AM1480이 별다른 문제없이 ‘뉴욕 라디오코리아’란 이름을 사용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혜련 씨는 5촌 당숙인 LA 라디오코리아 공동설립자 김병우 씨 덕분에 뉴욕에서 '라디오코리아'란 회사명을 사용 할 수 있었다.
1995년 김 씨가 소송에서 지고 방송국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자 뉴욕 라디오코리아 대표는 김영일 씨로 바뀌고 말았다. 이 방송국은 1997년 1월, 뉴욕시 플러싱에서 부인 권은재 씨와 함께 ‘엘리트 아카데미’ 학원을 운영하던 권영대 씨(71)에게 인수돼 ‘AM930 라디오서울’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권 씨는 AM1480으로 주파수를 바꿨다가 AM1430으로 재변경하기도 했다. 한 때 그는 AM1430과 함께 AM730을 운영하며 두 가지 주파수로 동시에 프로그램을 송출하기도 했다. 2004년 2월 4일, ‘뉴욕 라디오서울’은 ‘AM1660 뉴욕 라디오코리아’로 이름과 주파수를 변경하고 24시간 방송체재에 돌입했다.
하지만 'LA 라디오코리아' 측은 권 사장이 '뉴욕 라디오코리아'란 회사명을 사용하자 이에 대해 법적조치를 거론하며 사용을 막았다. 이는 예전 김혜련 씨의 경우와는 다른 행보였다. 결국 AM1660은 ‘라디오코리아’란 회사명 대신 법적명 ‘KRB(Korean Radio Broadcasting)’와 통상명칭 ’KRB 뉴욕 라디오코리아’를 사용하다 AM 중파방송에서 초단파방송인 FM87.7로 갈아탔다.
권 사장이 포기한 AM1660은 현재 주파수 주인인 ‘멀티컬쳐럴 라디오 스테이션 (Multicultural Radio Broadcasting / 대표 아더 리우)으로부터 이석찬 씨(69)가 임대받아 ’K-라디오‘란 회사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04년 1월 27일, AM1660 권영대 사장(오른쪽)이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월 4일부터 24시간 방송을 실시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조종무 당시 보도본부장. 〈사진=동아일보〉
북한 애국가 튼 좌파방송인들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AM1480 뉴욕 라디오코리아'가 문을 닫고 사장과 방송국 주파수가 계속 바뀌었지만 문제의 J 씨는 아침방송 진행자 자리를 놓지 않았다. J 씨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이는 김혜련 씨 이후의 방송국 사장들인 김영일, 권영대 씨가 별다른 정치성향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J 씨는 특히 권영대 사장과는 18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또한 C 씨는 신문사 등에서 근무하다 권영대 씨가 AM1660을 출범시키자 합류해 방송실장이란 중책을 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권영대 사장의 뒤통수를 치고 권 사장 곁을 떠났다. C 씨는 권 사장과 나눈 사업상의 비밀얘기를 1959년 동갑내기이자 K 부정기 간행물 발행인 김모 씨에게 발설해, 김 씨가 이 내용을 자신의 간행물에 게재케 만들었다. 이로 인해 C 씨는 권 사장의 눈 밖에 나 방송국을 떠나게 됐다.
이후 그는 TV방송과 주간지 등에 근무하다 201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미국생활 25년만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C 씨는 더불어민주당 산하 세계한인민주회의, 세계호남향우회총연합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해외동포위원회 등의 좌파단체에 활동하다 지난 2020년 12월, 3년 임기의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로 임명됐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지난 6월 5일 재외동포청을 출범시키자 재외동포재단은 자동해산 돼 사업이사 C 씨는 임기를 채울 수가 없었다.
FM 87.7 방송국은 과거 'KRB 뉴욕 라디오코리아'(당시 사장 권영대)에서 지난 2021년 7월 1일부터 '보이스 오브 뉴욕 라디오코리아'란 회사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권 전 사장은 방송국 지분만 갖고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임오혁 본부장(아래 사진)이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J 씨는 2015년 5월 개국한 AM1660 K-라디오(당시 사장 김영길·이사장 이석찬)의 산파(産婆)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J 씨가 FM87.7을 경영하던 권영대 사장 밑에서 근무하며 K-라디오 개국에 깊이 관여해 권 사장의 분노를 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본지는 이 문제를 다룬 기사를 2015년 3월 보도했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J 씨는 친분이 두터운 1957년 동갑내기 시인(時人) 김모 씨를 시켜 본지에 항의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당시 ‘FM87.7 KRB 뉴욕 라디오코리아('보이스 오브 뉴욕 라디오코리아'의 이전 회사명)’에 근무했던 전직 방송인 B 씨는 “J 씨가 월급은 우리 회사에서 받으면서 남의 라디오방송국 개국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알고 모든 직원들이 분노에 떤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B 씨는 “당초 적자에 허덕이던 권 사장은 방송국 문을 닫고 방송계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며 “그러나 〈뉴스메이커〉에 게재된 J 씨의 행태를 보고 화가 난 권 사장은 ‘은퇴 발언’을 취소한 후 J 씨와 K-라디오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AM1660 K-라디오’의 개국은 이석찬(전 뉴욕대한체육회장), 윤여태(2020년 4월 6일 작고·전 뉴저지 저지시티 시의원), 김영길(한미연합회 미주본부 총괄회장), J 씨 4인방에 의해 이뤄졌다. FM87.7을 그만 둔 J 씨는 또다시 AM1660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가 모신 사장만 25년 동안 김혜련→ 김영일→ 권영대→ 김영길 씨 네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변신의 달인’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J 씨에게 덜컥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지난 2015년 5월, AM1660 K-라디오 개국 멤버였던 (위로부터) 이석찬(당시 이사장), 김영길(당시 사장), 故 윤여태 씨. 이들 세 사람은 정치적으로 우파였던 반면 이들과 함께 방송국 개국 멤버였던 J 씨만이 좌파여서 우파층의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지금까지 김혜련, 김영일, 권영대 사장은 좌파 또는 정치적으로 별다른 견해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K-라디오의 개국멤버인 김영길, 윤여태, 이석찬 씨는 달랐다. 그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자유우파 인사들이었다.
이들 세 사람에게 J 씨의 정치성향 및 과거 행적이 전해졌다. 그 때까지도 세 사람은 J 씨가 좌파사상을 갖고 1994년, 김일성 사망을 애도하며 북한 애국가를 방송에서 튼 사람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J 씨는 K-라디오가 출범하고도 2년을 더 방송을 하며 부사장까지 승진 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석찬 씨(현 사장) 등은 J 씨에 대한 우파층의 비난여론으로 인해 결국 J 씨와 한배를 계속 탈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70년대 한국에서 성우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J 씨는 80년대 뉴욕에 이민 온 후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변신을 거듭하며 제작부장→ 제작본부장→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40년간의 방송생활을 명예롭지 못하게 마무리했다.
북한 애국가 방송사고 당시 뉴욕 라디오코리아에 근무했던 A 씨는 “정상적인 방송계라면 J 씨의 방송생명은 지난 1994년 7월에 끝났어야 마땅했다”며 “이후 20년 이상을 한인 방송계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J 씨의 생명력과 변신에 경탄을 금치 못 한다”고 말했다. A 씨는 “다시는 뉴욕 한인사회에 J 씨와 같은 좌파 방송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면서 “29년 전의 혼란스러웠던 회사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고 전했다.
임종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