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수사권 이관 받은 경찰, 대공수사관은 전국에 70명뿐 ••• 친북좌파 더불어민주당이 무력화 시킨 국정원 간첩수사, 점차 현실로 드러나
전•현직 안보경찰관 10인의 격정토로 “빛바랜 사명감 ••• 멸공은 커녕 공멸 할 판","암울하고 참담한데 희망도 없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2023년 1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서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들어갔다.
커피숍에 들어선 그는 앉기 전 주변부터 훑었다. 오랜 대공(對共) 수사로 몸에 밴 습관 같았다. 혹은 상사(上司)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일는지도 모른다. 안보 수사 경력 15년 이상인 현직 경찰 A씨의 얼굴에는 수심(愁心)이 가득했다.
“올해 안보수사대에 전입한 팀장급 대다수가 국가보안법 수사를 한 번도 안 해봤다. 국가보안법령은 물론, 사회주의의 태동 배경, NL·PD의 뿌리, 주체사상과 주사파 같은 건 모른다고 봐야 한다. 한데 우리는 계선(系線) 조직이잖나. 반박도 못 하고, 그저 맞춰주며 일할 수밖에 없다. 팀원 중에선 안보가 한직(閑職)이라 ‘쉬었다 간다’는 생각으로 뒷배를 이용해 들어왔다가 후회하는 이도 있다. 기막힌 노릇이다.”
다른 날 만난 현직 경찰 B씨. 약속시각이 훌쩍 지난 시점 잰걸음으로 들어선 그는 사과와 함께 “갑자기 일이 터져 늦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안보 수사 경력 15년 이상인 B씨는 긴 한숨부터 뱉었다.
“간첩 잡으러 다니느라 바쁜 게 아니다. 내근 업무가 너무 많다. 일보(日報), 주보(週報), 월보(月報) 등 하루에도 수시로 업무파악 요구가 내려온다. 그래서 정작 해야 할 수사 활동을 못 한다. 이러한 업무파악 자료 요구는 날마다 증가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간첩을 잡으란 얘기다.”
홍제동 안보수사과 사정을 잘 아는 그는 “밤낮으로 채증(採證)하러 다녀도 모자랄 판에 홍제동에서는 현장 활동이 없어졌다”면서 “다만 ‘보고를 위한 보고’에 매달릴 뿐”이라고 했다.
“현장을 뛰지 않고 앉아서 수사를 하다 보니, 수사 노하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남영동·홍제동 대공분실(對共分室)은 사실상 경찰 대공 수사의 뿌리다. 내·외부기관 등의 감사(監事)라는 명목과 알권리 우선으로 작금의 경찰의 안보 수사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쏟아지는 보고서 작성으로 수사 진행 상황 노출 위험성도 커졌다. 심각한 문제다.”
대공수사권 전담 6개월, 경찰 내부 풍경이다.
최일선 감시망 모두 마비
경찰 대공 수사의 총본산은 경찰청 본청 산하 국가수사본부에 설치된 안보수사국이다. 사진은 국수본 모습.
지난 63년간 간첩은 국가정보원에서 잡았다. 올해부터는 못 잡고 있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다.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때부터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한다. 최근 한 달 동안 틈틈이 만난 10명의 전·현직 안보경찰들은 “현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亂局)”이라고 했다. 10명 중 현직은 6명, 전직은 4명이다. 현직은 모두 안보 수사 경력 20년 안팎의 전문 요원들이다. 이들 입에선 이따금씩 “참담하고 암울하다”는 표현이 나왔다.
경찰의 대공 업무 전담 시 우려사항은 여럿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해외망(網) 부재(不在)였다. 그런데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지근거리에 더 큰 복병(伏兵)이 있었다. 최근까지 일선서(署) 안보과(課)에서 근무했던 현직 C씨는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게 되면서 일선서 안보망은 완전히 붕괴됐다”면서 “최일선(最一線) 감시망이 모두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 후 경찰은 안보 기능 강화 명목으로 경찰청 본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지방청에는 안보수사대를 두고 있다. C씨는 “본청에서는 안보수사국과 안보수사대에 전문 인력을 확충했다고 홍보했지만, 사실은 일선서 안보과를 폐지하고 그곳 요원을 빼간 것으로, 전체 안보경찰의 증원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조직 개편에 앞서 전문가 집단의 타당성 검증 등 중장기 계획 없이 수직으로 내리꽂듯 추진된 일”이라고 했다.
“올해 직제 개편으로 서울 31개 경찰서 중 단 6곳(중부, 종로, 남대문, 용산, 강남, 수서)에만 안보과가 남았다. 나머지는 ‘경비안보과’ ‘정보안보과’ 등으로 타 기능(부서)과 통합된 후 안보계(係)로 격하(格下)됐다. 인원도 반 토막 났다. 한편 업무는 늘었다. 경비나 정보 업무를 같이 봐야 해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선서에서도 간첩 수사가 가능했다. 성과지표에도 들어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간첩 잡지 말라는 얘기다. 다른 업무가 산적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지역마다 포진한 종북(從北) 세력들이 활개 칠 일이다.”
조삼모사 격 조직 개편
일선서 안보 수사는 경찰의 강점 중 하나였다. 이자하 전 서울경찰청 보안(현 안보)1과장은 “국정원, 검찰 등 수사조직과 비교했을 때 경찰의 경쟁력은 촘촘한 하부 조직이 있다는 것”이라면서 “지역마다 배치된 경찰서의 안보과 폐지는 공공안보의 실핏줄이 모두 마비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하부 조직에서 수집한 대공 첩보가 상부로 올라오는 구조인데, 그 기능을 없앴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줄어든 일선서의 안보 인원은 안보수사국과 안보수사대의 정원(定員)이 됐다고 한다. 모(某) 지방청 소속 안보경찰 D씨는 “경찰 수뇌부에서는 어떻게든 대공수사력을 강화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늘 해오던 대로 조삼모사(朝三暮四) 격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라면서 “이 같은 상부 조직(본청·지방청)의 비대화는 행정 편의주의의 전형”이라고 했다.
일선서 안보 요원들이 모두 안보수사국이나 안보수사대로 간 것도 아니라고 한다. 현직 C씨의 말이다. “일부 요원들은 타부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안보수사국의 나머지 정원은 보직 공모를 통해 채웠다. 타부서에서 누구나 신청할 수 있도록 문호(門戶)를 열어놔, 일반 수사 경과(警科)자들도 상당수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 안보요원들의 유실(遺失)이 발생했다.”
여기서 ‘일반 수사 경과자’란 일반 수사를 맡았던 경찰을 뜻한다. 간첩 수사는 일반 수사와는 결이 다르다. 안보 수사와 일반 수사 모두 해본 지방청 소속 D씨의 말이다.
“일반 형사범은 물리적 증거를 남기기 마련이다. 한데 사상범(思想犯)인 간첩은 증거가 거의 없다. 북한의 지령에 따른 임무를 실행하기에 정체를 숨기는 위장선전에 뛰어나서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부분 재범(再犯)이고 엘리트라 수사관 머리 위에 있다. 사건 하나에 적게는 5년, 길게는 20년까지 걸리는 이유다.”
B씨 또한 “안보 파트에 일반 수사 경과자가 대거 인입(引入)해 근무 중”이라며 “상부에서는 ‘다 같은 수사 아니냐’며 받아들였다”고 했다.
‘여기는 미래가 없다’
2020년 12월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됐다.
박주현 자유민주연구원 공권력감시센터장(경찰학 박사)은 “일반 수사 경과 출신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해보면 마인드가 다르다”고 했다. 30년 경찰 경력 중 안보 수사 이력만 25년인 박 센터장은 일선서 안보과와 안보수사대를 거쳐 경찰수사연수원 안보수사학과장을 끝으로 2023년 퇴직했다.
“우선 안보 수사는 ‘속도가 안 난다’고 한다. 둘째, ‘보상이 없다’고 한다. 셋째, ‘용어를 모르겠다’고 한다. 일반 수사는 몇 개월 안에 몇 명을 검거했는지 성과와 피해금액이 명확히 나오는데, 간첩 수사는 죽어라 매달려도 진척이 없고 피해금액 산정액도 안 나오니, 특진 심사 때도 뒷전이 된다. 그런데다가 국보법 법령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번에 발령 난 한 후배에게 국보법 1조부터 25조까지 정리해 사례와 함께 건네고, 얼마 후 ‘좀 들여다봤느냐’니까 ‘보고서 치느라 바빠서 볼 시간이 없다’더라.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돼도, 밖에서 누굴 만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인적 네트워크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문제는 관(官) 내 이들을 끌어줄 선배들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현직 C씨는 “지난 정부 때 안보 조직이 축소되면서 베테랑 선배들이 ‘여기는 미래가 없다’며 많이 빠져나갔다”면서 “그래서 안보 수사 경력 20년 이상인 경찰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경찰청 본청 한 관계자는 “안보경과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장기 근무자는 강제 발령 내는 추세인데, 이를 인적 쇄신(刷新)으로 포장하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간첩 안 잡아본 지휘관들
현재 전국의 안보경찰은 약 2300명이다. 이 중 수사 인력은 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행정지원(기획·분석)과 북한이탈주민 신변보호 인력이다. 지방청 중 서울청과 경기남부청을 제외한 대부분 안보수사대의 인력은 20명 이하다. 이 중 이번에 새로 뽑은 인력의 70%가 안보 수사 경험이 없다.
팀장급 80% 또한 한 번도 간첩 수사를 안 해봤다. 박주현 센터장은 “어느 지역 안보수사대에 중간관리자로 간 후배가 있다. 그간 했던 업무와 전혀 다른 부서로 발령 났기에 ‘할 만하냐’고 물었더니 ‘3개월간 용어집만 보고 있다’고 했다”고 했다.
한 지방청 소속 안보경찰 D씨는 “새로 온 부서장이 국보법 조항이나, 과거 전대협, 한총련, 범민련 등의 활동사항을 전혀 모른다”면서 “대공 수사의 특성 또한 파악하지 못하고 어느 날은 수사 진행이 더디다며 ‘하는 게 뭐가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고 했다.
A씨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휘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형사수사팀 한 팀만 투입하면 한 달 내로 해결할 걸, 수사를 너무 질질 끈다’고. 진행 중인 방첩(防諜) 사건을 ‘그냥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로 마무리 지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전(全) 직원 앞에서 수사 내용과 수사 진행 사안을 발표하라는 비상식적인 지시를 한 일도 있다.
육상으로 치면 일반 수사관은 단거리 선수지만, 대공수사관은 마라톤 선수다. 그것도 신분 노출 위험성 등 철저한 보안을 지키며,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뛰어야 하는 선수다. 업무 특성도 모르는 인사가 수사대장, 과장, 국장으로 와서 수사 지휘라는 이름으로 수사를 닦달하는 걸 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현직 안보경찰 E씨는 “심지어 모욕감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 부서장이 경찰 지인(知人)과 전화 통화를 하며, ‘내가 잡냐? 밑에 애들이 잡지’라고 한 일이 있다. 상대방이 안보 파트 발령 후 고되지 않으냐고 물은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부서원들에게 성과를 닦달하며 ‘기대도 안 했다’는 말을 한 날이었다. 그날은 유독 오랫동안 담배를 태웠다.”
‘진급 위해 거쳐 가는 곳’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 후 경찰은 안보 기능 강화 명목으로 경찰청 본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지방청에는 안보수사대를 두고 있다. 사진은 서울지방경찰청 전경.
B씨는 “안보수사과장(총경)과 안보수사대장(경정)들이 안보경과를 진급을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여기고, 이들 포함 서울청 안보수사부장(경무관)과 경찰청 안보국장(치안감) 등이 거의 1년 주기로 교체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조직에 애정이 없다. 진급을 앞두고 있어 ‘몸 사리기’도 심하다. 뭘 좀 하려고 하면 사고 날까 봐 못 하게 하는데, 가령 차량 이용 미감(미행·감시) 때 교통사고를 걱정하는 식이다. 요즘은 일과시간 외 활동에도 제약이 있다. 하달받은 일에만 전념하라고 해서다. 대부분 현장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과 홍보에만 신경 쓴다. 한 번이라도 국가 안보나 안보 수사 발전을 고민해봤는지 의문이다.”
예컨대 경찰청장이 2024년을 “경찰 중심의 안보수사체계 원년(元年)”으로 삼은 만큼, “경찰의 대공 수사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므로, 공백 없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 모두 홍보성 발언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B씨는 “대공 수사가 의지로 된다는 건 미경험자의 생각”이라고 했다.
이자하 전 서울청 보안1과장은 “경찰의 인사 시스템상 지휘 감독관들은 1년에 한 번씩 순환 보직을 하다 보니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10~20년 맥(脈)이 이어지는 대공 수사의 경우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는데 국가 안보보다 정치 논리가 앞서다 보니 이 사달이 난 것”이라고 했다.
D씨와는 다른 지방청 소속 현직 E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퇴직을 결심한다”고 했다. 이 지방청에서는 안보수사대마다 막대그래프를 붙여놨다고 한다. 가령 안보수사대가 1대부터 6대까지 있다고 하면, 어디에 대공 성과가 더 많은지 도표를 만들어 사무실 벽에 걸어놓은 거다.
“대공 수사 전담 후 정부 및 국회 등에서 점검이 이어져 공격 회피용으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인원 늘리기를 해놓고, 그만큼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단기간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잔챙이 사건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특수성이 담보돼야 할 안보 파트에도 경찰의 성과주의 조직 문화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E씨는 “내년 1월에는 안보 요원들이 모두 도망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멸공(滅共)은커녕 공멸(共滅)할 판”이라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인사 시즌 때마다 성과를 못 낸 ‘진성 안보맨’들이 퇴출당하고, 그 자리를 일반 수사 경과자들이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그래서 경찰 안팎에서는 ‘안보는 안 보인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A씨는 “본청에서는 경찰 단독이든, 국정원 합동 수사든 간첩을 직접 검거·조사한 이력이 있는 수사관의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안보경찰이 민원 처리까지
쏟아지는 민원도 발목을 잡는 요소 중 하나다. 안보 업무와 대민(對民) 업무가 분리되지 않은 셈이다. 한 지방청 소속 F씨의 말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고소·고발 건 중 국보법과 관련 있으면 각 수사대에 팀별 배당이 된다. 배당량은 날마다 증가한다. 일선 민원 부서도 아닌데, 이와 관련한 보고 등 업무로 인해 정작 해야 할 안보 수사를 제대로 못 하는 형국이다. 수사력 손실이 엄청나다.”
C씨도 민원 얘기를 했다. “일선서 안보과의 경우, 112 종합상황실에 들어온 신고가 조금이라도 안보와 연관이 있으면 넘겨받아 처리해야 한다. 예컨대 공사 현장에 폭발물 의심 물체가 있다, 거동이 수상한 자가 돌아다닌다, 드론이 떴다, 총기가 발견됐다 등이다.
이럴 땐 공휴일, 명절, 심야시간 할 것 없이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 출동 시 불법주차를 하면 안 되기에 주차 공간 파악까지 겸해 3인 1조는 돼야 한다. 때문에 안보과가 남아 있는 6개 일선서도 사실상 대공 수사 업무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박주현 센터장은 “고소·고발 등 민원인 접수 사건은 단순 절차대로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업무에 치중하게 되면 정작 해야 할 인지 수사(탐문 정보를 통해 범죄 단서를 포착해 수사에 나서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했다.
사비 털어 정보 구입하는 경찰들
부족한 예산도 걸림돌이다. 지방청 소속 D씨는 “대공수사권 전담이라는 중차대(重且大)한 임무를 맡아도, 권한은 그만큼 받쳐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안보수사역량강화 예산은 총 425억7200만원이 배정됐다. 지난해(315억4800만원) 대비 110억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D씨는 “대상자를 인지해 장기간 수사하고, 사업(공작)을 통해 연계망까지 색출하려면 간첩 한 명당 십수억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예산 집행이 국정원처럼 유연하지도 않다”면서 “경찰 조직은 직원을 마치 예산을 횡령하는 사람처럼 대한다”고 했다.
“이때 열정적인 직원들은 사비(私備)를 쓰기도 한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봤다. 통제 안 받고 자유롭게 수사하겠다는 거다. 대공 수사 경험이 없는 수뇌부들은 정보원을 만나면 당장 정보가 나오는 줄 안다. 이를테면 ‘왜 며칠 전 만난 사람과 또 밥을 먹었느냐’는 식이다. 앞으로 경찰이 제3국 정보 협력자까지 구축해야 할 형국인 만큼 유연한 예산 편성이 절실하다.”
박 센터장은 이어 “정보도 곧 비용”이라고 했다. “한 정보원이 100페이지가 넘는 노동당 규약 개정판을 1000만원에 입수해온 적이 있다. 이걸 경찰에게 제공하려고 한 직원을 만났는데, 그 직원이 사비로 50만원을 건네면서 ‘이걸로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했다고 하더라. 이처럼 뭐든 해보려고 애쓰는 안보경찰들도 많은데,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는다.”
국정원과의 공조 한계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뀐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
박주현 센터장은 이어 “경찰이 자체 보유한 대북(對北) 정보가 부실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내가 경찰교육기관에 있던 2016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실무부서에 ‘2012년 김정은의 전시작전 세칙 변경’ 관련 자료를 요청했는데 구할 수 없었다. 4년 만에 직원도 다 바뀌어서 내용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다른 정보원을 통해 입수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경찰 대공 분야 신화로 불렸던 대선배들이 작성해놓은 수기(手記) 정보는 데이터베이스(DB)화도 안 돼 있다. 대부분 한자라 젊은 직원들은 읽지도 못한다. DB화해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아직 진척이 없다.”
국정원과의 정보 공조(共助)는 안 되는 걸까. 국정원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폐지됐지만, 정보 수집이나 조사권한은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민주당 측은 “경찰과 국정원이 정보 공유만 잘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현직 A씨는 “외형적으로 일부 공조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처럼 긴밀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당초 국정원 측은 ‘국정원·경찰과의 정보 공조 시스템’에 대해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망의 출처 보호 등으로 인해 협력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했다.
현직 안보경찰들도 대체로 이에 공감했다. B씨는 “경찰 조직 내부에서도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데, 외부 기관과의 기밀 공유가 말처럼 쉽겠느냐”라면서 “실제로 법정에서 정보 출처를 밝히고 증언해야 하는 문제로 증거를 철회한 경험이 있다. 국정원 주장은 일리 있는 것”이라고 했다. C씨 또한 “안보 요원으로서 국정원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면서 “수시로 인사이동이 일어나는 경찰 조직을 신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대북 정보뿐만 아니다. 새로운 간첩 대상자의 정보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의 단서를 수집하려면 입건 전 조사(내사)가 필요한데, 조사를 하려면 사법경찰권이 있어야 한다. 국정원의 사법경찰권은 대공수사권 폐지와 함께 박탈됐다. 이자하 전 서울청 보안1과장은 “국정원에서 보유한 첩보 등의 경찰 이첩에는 보안을 비롯한 법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국정원의 조직 특성상 정보 활용을 철저히 비밀로 관리하는 것은 타당하다”면서도 “그러나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국정원에서 보유한 정보에 대한 경찰의 접근 및 활용 방안을 상호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과의 합동 수사
1997년 11월 20일 안기부(국정원)가 부부간첩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이병진 전 경찰청 보안국장은 “현 체제의 공조는 과거 양 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공조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했다. 1973년 입직해 경북지방경찰청장, 대구경찰청장, 치안정책연구소장, 중앙경찰학교장을 역임하고 2005년 경찰청 보안국장을 끝으로 퇴직한 그는 1997년 경찰청 보안국 보안심의관 재직 당시 울산부부간첩 검거를 지휘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홍조근정훈장도 받았다.
이 전 국장은 1997년 10월 울산의 한 호텔에서 대기 중인 보안 수사 요원들에게 사복 정장을 입고 손님으로 위장해 있도록 지시했다. 또한 권총에 실탄(實彈) 장전과 함께, 부부의 울산 외곽으로의 도피를 막기 위해 울산 전체를 봉쇄하도록 주문했다. 그는 “커다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후 나머지는 현장 판단에 맡겼다”면서 “인력 배치 3분 만에 검거가 완료됐다”고 했다.
대표적인 새세대 간첩인 최정남·강연정 부부는 1997년 경남 거제도 해안으로 침투했다. 이 전 국장은 “침투 전 부부의 활동상 등 전반적인 내막은 국정원에서 알고 있었다”면서 “국정원과의 공조가 없었다면 원활한 검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최정남은 국정원이, 강연정은 경찰이 잡았다. 이 전 국장은 “이후 강연정이 몸속에 숨겨온 독약 앰풀로 자살해 역용공작(逆用工作·적국의 정보 요원을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는 공작)에는 실패했지만, 국정원과의 공조가 잘 이뤄졌던 사례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이어 “각종 장비와 공작 기법 등 63년간의 노하우를 지닌 국정원 없이 경찰 단독으로 대공 수사를 하라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어른 흉내를 내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
실제로 A씨는 “해외 정보, 대북 정보, 과학 수사, 정보원, 수사비 구축이 국정원처럼 안 된 상태에서 경찰 단독으로 수사를 진행하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특히 해외 정보는 전적으로 국정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자하 전 서울청 보안1과장은 “경찰은 기본적으로 국내 치안 담당 기관으로 해외 정보를 수집할 수가 없다”면서 “경찰이 해외에서 내수사를 할 경우 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A씨의 말이다.
“예컨대 법원 영장을 통해 대상자의 국제전화 통화 내역을 파악하더라도 지금은 그 전화번호의 명의자나 실제 사용자를 파악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국정원의 해외망을 이용해 이러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간 국정원과 합동 수사도 여러 차례 해봤는데, 현시점에서 국정원의 협조 없이는 간첩단 등 큰 사건은 결코 못 할 거라 생각한다.”
B씨는 “지금 경찰의 대공수사권은 반쪽짜리 수사권”이라고 했다. 그는 “인력·예산·해외망 문제를 단기간 내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상당량의 시간과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이 이미 구축해놓은 막대한 자산을 버리고 새롭게 일궈나가야 되는 현실이 암담할 뿐”이라고 했다.
모 지방청에서 대공수사대장을 지낸 한 인사는 “방첩을 위해서는 경찰, 국정원, 방첩사라는 3축 체제가 가장 이상적(理想的)”이라면서 “경찰 조직 문화 개선과 해외망 구축 등 수많은 난관(難關)을 돌파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국정원에 다시 수사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병진 전 경찰청 보안국장 또한 “현재 경찰 지휘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산적한 문제를 없애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복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참패(慘敗)로 복원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 무력화 위해 부득불 넘긴 수사권”
국정원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국정원 측은 “이는 곧 대공 참사이자 안보 참사”라며 비분강개(悲憤慷慨)했다. 그 무렵 경찰 내부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 혹은 무관심’이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내부에선 반기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분위기였다”면서 “일각에서는 대공수사권 전담으로 인력과 예산이 강화될 거라는 기대감도 비쳤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개중에는 수사권이 결국엔 원복(原復)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이와 세태(世態)에 아예 무관심한 이도 다수였다고 한다.
현직 B씨는 “수사권을 가져온다는 큰 방향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면서 “안보 수사 경험이 없는 간부·지휘관급은 ‘경찰 안보 수사가 한층 발전될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한편 일반수사권이 아닌 대공수사권이므로 심각한 문제라 여기는 이들도 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면서 “국가 대공 수사를 약화시키는 패착(敗着)이며, 안보를 위해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안보 참사’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C씨는 “대공수사권 전담으로 경찰은 졸지에 ‘동네 북’이 돼버렸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권이 경찰이 예뻐서 대공수사권을 줬겠나. 국정원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득불(不得不) 넘긴 거다.
이게 세간에는 ‘전 정부의 경찰 챙기기’처럼 비쳤는지 소모적인 외부 공세가 너무 많다. 전 정권에선 애초에 불가능했던 단독 수사권을 쥐어주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경찰 역량이 부족하다고 하고, 이번 정권에선 ‘공룡 경찰’이 될까 봐 견제한다.”
경찰청 및 시·도청 안보수사팀장 및 책임안보수사관 지원자들이 2023년 6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안보수사 지휘역량 평가시험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 가족 뒀던 간첩
F씨는 “갈수록 간첩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국내 고정간첩과 자생적(自生的) 종북 세력을 포함한 이적 세력은 경우에 따라 수십만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D씨는 “흔히 ‘요즘 시대에 무슨 간첩이냐’는 건, 우리 사회에 간첩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북한의 전술이자, 좌파 정권의 평화 선전선동, 인지전(認知戰)의 산물”이라면서 “북한은 75년 동안 대남침투 활동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수사기관에 적발된 세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현직 A씨의 말이다.
“수사 대상자 가족 중 경찰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 직원은 가족이 반미(反美)주의자 내지는 운동권 인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경찰인 가족까지 속이는 게 간첩인데, 일반인들은 그 존재를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C씨는 “안보관이 투철한 요원들은 과거 음지(陰地)에서 활동했던 간첩들이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 사회와 제도권 내까지 침투해 있는 것을 보며 6·25 전 단계에 와 있지 않나 하는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며 일한다”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간첩은 꼭 잡아야 한다”고 했다.
한때 경찰은 발군(拔群)의 대공 수사력을 보유했었다. 직파(直派) 간첩이 많던 때니, 오래된 얘기다. 유신 말기 최대 공안 사건인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도 경찰이 잡았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도 몰랐던 사건이다.
그러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래 경찰 대공 수사는 점차 힘이 빠졌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조직은 완전히 축소됐다.
김영삼 정부(1998) 때 4188명이던 안보경찰은 김대중(2904) 때 44%가 줄어 2904명이 됐다. 이후 노무현(2008) 때 1874명으로 한 차례 더 급감한 뒤 회복을 못 하고 있다. 박주현 센터장은 “과거 대공 수사 선배들은 대공 특채로 들어와 한길만 걸은 분들이 많았다”면서 “거물 간첩 한 명으로 특진을 세 번씩 하기도 했다”고 했다.
자연히 한직이라는 오명(汚名)이 따라붙었다. E씨는 “이때 안보 수사 조직은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일반 수사 영역을 대공 수사 업무로 포장해 처리하기도 했는데, 자괴감이 상당했다”고 했다.
C씨는 “특히 지난 정권에서는 안보 분야 장기 근속자를 드러내놓고 적폐(積弊) 취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보안국(현 안보수사국) 모 지휘관은 보안국을 아예 없애자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최근 민주당에서 한자리를 차지했더라”고 했다.
정권 따라 바뀌는 수사 방향
F씨는 “정권마다 급격히 바뀌는 안보 수사 방향도 사기(士氣)를 꺾는 요인 중 하나”라면서 “지난 정부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했을 때는 과장이나 부장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직접 나서 수사를 지휘하는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이병진 전 경찰청 보안국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있었던 비화(祕話)를 들려줬다.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한 동국대 강모 교수를 내수사하고, 검찰에 구속 방침을 내비친 일이 있다.
법무부에서 영장 발부를 해주지 않자 결국 검찰총장이 사퇴했는데, 이후 청와대에서 본청 보안국과 서울청 보안부 소속 전원의 인사기록카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옷 벗겠다는 각오로 강경 대응해 인사기록카드 제출은 막았지만, 명단은 넘겨줘야 했다.”
F씨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배의 말이 있다. ‘대공수사관은 정권 안보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말”이라면서 “나 또한 후배들에게 ‘정권의 변화에 따른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말을 명심하고 자부심과 열정으로 버텨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다”고 했다.
박주현 센터장은 “조명을 못 받아서 그렇지 경찰 내부에는 여전히 능력 있는 안보 요원들이 많이 있다”면서 “여러 차례 국보법 4조(목적수행)를 수사했음에도 승진이 안 된 사례가 많은데, 이들의 긍지와 자부심 고취를 위한 포상제도와 특진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가능하다면 안보수사국을 국수본에서 독립시켜 ‘국가안보수사본부’ 편제로 운영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최선책”이라면서 “그 아래 별도의 특진제도를 도입해 안보 직렬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말 경무관 승진 대상자 31명 중에도 안보경찰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안보경찰이 단 2명만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A씨는 “전 수사대 직원을 대상으로 올해 시행 중인 2주간의 교육이나 3일간의 안보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 등에 오는 외부 강사들은 국정원 출신이거나 탈북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서 “정작 열심히 일한 우리 조직 안보 대선배들에게는 이런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 시 처단 1순위’
안보경찰들은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김정은이 우리 명단을 다 갖고 있다. 전쟁 나면 처단 1순위다.’ 그런데도 이 직(職)을 놓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했다. 사명감(使命感)이다.
이들 중에는 집회 현장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에 포위당해 무차별 폭행을 당한 이도 있다. 그 와중에도 증거가 담긴 휴대폰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조직은 포위당했다는 이유로 진상조사부터 했다고 한다. 한총련 수배자 검거 당시, 학내 대자보판에 실명이 공개돼 끈질긴 협박을 당한 이도 있다.
목숨 내놓고 일해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 B씨는 “상급자로부터 온갖 수모와 고과(考課) 저평가를 받으면서도 국가 안보의 선두에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으로 버텨왔다”고 했다. 그런데 임계치(臨界値)에 다다른 것 같다고 했다.
국보법 위반 피의자 다수를 수사한 이력이 있는 B씨에게 대공 업무를 하며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회상에 빠진 듯하다 입을 뗐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