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1.5·2세들 뒤늦게 한국어 공부에 열중
한국어 구사자를 요구하는 미국 기업들이 늘어가고 있다. 사진은 기업에서 구직자를 대상으로 면접(Job Interview)중인 모습.
“미국인들이 ‘방탄소년단’에게
열광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역시 조국(祖國)이 부강해야 해외동포들도 대우를 받는다. 한국이 커다란 경제성장을 하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 한인사회가 급성장을 하자 한국인들을 중요한 고객으로 대접하는 미국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한류 바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한인 이민자들이 자녀들에게 “한국어는 잊고 영어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 구사가 좋은 직장 구하기에 필수가 된 세상이 된 것이다. 최근 뉴욕 모 대기업에서 취업 인터뷰를 한 ‘아이비리그’ 출신 방 모(27)씨는 “기업 인사 담당자가 내게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한 후 내년에 우리 회사에 다시 지원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방 씨가 면접에서 한국어를 잘 못해 입사시험에서 낙방했다는 얘기이다.
방 씨는 “회사 측은 면접장에 한국어를 잘 하는 한국인 직원까지 배석시키고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인사담당자는 내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 씨는 “솔직히 인터뷰에서 한국어 구사여부를 문제 삼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친구들도 기업 인터뷰에서 ‘왜 한국인이 한국어를 잘 못하느냐?’는 말을 들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
방 씨는 “이제 한국어를 열심히 해 글로벌 기업에 취업을 하든지 아니면 한국어 구사를 요구하지 않는 직장에 취업을 하든지 결정해야 할 때”라면서 “(비록 취업에 실패했지만) 한편으론 한국인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잘 구사해 좋은 직장에 취업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맨해튼 J 기업에 취업한 크리스티나 한(26 · 뉴욕 웨스트체스터)씨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주말마다 한국학교를 열심히 다닌 덕을 이번에 봤다”며 “할머니와 부모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6세 때 미국에 왔다는 한 씨는 “한국과 교역하고, 미주한인들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 한다”며 “한인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한국어 공부를 꼭 시켰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 씨는 “친구들 중에는 뒤늦게 한국어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다”면서 “우리가 아무리 영어를 잘 구사하고 미국인들과 어울려 다녀도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그냥 한국인 일 뿐이란 사실을 부모와 자녀들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어를 잘 못해 ‘로우 펌(Law Firm)’에서 쫓겨나기 일보직전의 한인 직장인 여성도 있다. 뉴욕에서 10여명의 타민족 변호사들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2)씨는 “사무실의 한국인 여직원이 한국어를 잘 못해 한인 고객들 놓치기가 일쑤”라고 말했다.
김 씨는 기자에게 “아는 사람들 중에 한국어와 영어를 잘 구사하는 한인여성이 있으면 소개 좀 시켜 달라”고 부탁한 후 “좋은 대학교 안 나와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뉴저지의 치과의사 A 씨는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한인여성 ‘리셉션니스트’ 때문에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A 씨는 “(해당 직원이) 한인여성이라 당연히 한국어를 잘 구사 할 줄 알고 3개월 전 채용했다”며 “그동안 손님들로부터 ‘컴플레인(항의)’을 받은 게 10건도 넘는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해당 직원이 9세 때 부모와 함께 이민을 왔다는데, 조금이라도 어려운 한국어 단어는 전혀 알아듣지를 못해 내가 환자치료 하다말고 손님 전화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전했다.
A 씨는 “치과에 근무하면서 ‘발치(拔齒)’란 단어 뜻도 모르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반문한 후 “하지만 이중언어를 잘 구사하는 한인직원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부모 책임이다.
한인 부모들이 바쁘고, 맞벌이라는 이유 등으로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집안에 조부모(祖父母)가 존재하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향으로 자녀들이 한국어를 잘 하지만 이민사회 여건상 이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한국 웹툰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 발음 공부에 열심히 2세 한인여성과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 공부를 하는 미국인 어린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주말 한국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한인 어린이들의 모습. 자녀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위해선 한국학교 입학은 필수적이다.
한편 본지가 미국 주류사회 구직전문 사이트 ‘몬스터 닷컴’(Monster.com)과 ‘커리어빌더 닷컴’(carreerbuilder.com)에서 확인해본 결과 현재 AT&T, 버라이즌, 디렉 TV, 닐슨, 패니매 등 수십여개 크고 작은 주류기업들이 자격 요건에 한국어를 명시해 두고 있다. 몬스터 닷컴에서 키워드를 ‘Korean’으로 검색하면 2백여개의 구직정보가 검색된다.
커리어빌더 닷컴의 경우도 비슷하다. 주로 영어 및 한국어를 ‘유창하게’(Fluent) 구사하는 인재들을 찾고 있는 업체들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개인사업체 등도 해당된다. 특히 세일즈(영업), 고객서비스, 마케팅 분야가 이중언어 구사자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이다.
이 외에도 뉴욕, LA, 텍사스, 조지아, 오하이오 등에 위치한 다양한 기업들이 법률회사 비서, 의료 보조원, 온라인 마케팅, 고객 상담, 행정, 차량 수리,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수 많은 포지션에서 한국어 구사자를 찾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미국에서 태어난 20대 두 자녀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 한다”는 민모(52·뉴저지)씨는 자녀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 ‘노하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단 집에서 무조건 한국어를 구사 하도록 했다. 영어로 물어보면 대꾸도 안했다.
물론 주말마다 한국학교 보내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매일 간단한 한국어 문장 10줄 정도를 따라 읽게 한 후 아이들이 읽은 문장을 그대로 노트에 쓰게 했다. 또 다시 따라 읽기를 한 후 본인 혼자 읽기를 거의 하루도 안 거르고 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귀찮아했지만 나중에는 자기들 스스로가 한국 드라마와 영화 대사를 알아듣는 것을 대견해 했다. 자녀들 한국어 교육은 부모들 노력 없이는 정말 힘들다. 지금은 아이들이 좋은 직장 다니고, 이중언어 구사자로 직장에서도 인정 받고 있다. 심지어 불경기 때도 감원(減員) 안 당하고 살아남았다.
회사의 주요 거래처 중 하나가 한국 대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부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한국어 필요 없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며 안심하지 마라. 사람 앞날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영어를 잘 하고 능력을 인정받아도 미국인들은 우리를 한국인 이상도 이하로도 안 본다.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한다? 결코 자랑스런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입양아들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쓴다. 한국이 그만큼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게 됐다는 얘기이다. 조국의 자랑스러움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 미국인들이 BTS(방탄소년단)에게 열광 할 줄 누가 알았겠나?”
임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