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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문서 확인> 韓美, 김대중 미국 비자금 의혹 3년간 합동 추적(1탄)
  • 월간조선
  • 등록 2024-09-12 12: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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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국세청-FBI·美국세청(IRS) 합동으로 비자금 계좌 등 확인






 미국내 김대중 비자금을 추적해 최초보도한 <뉴스메이커USA>로 인해 한국의 <월간조선>도 비자금 추적에 뛰어들었다. <월간조선>의 조성호 기자(현 TV조선 기자)는 수차례 본지 임종규 선임기자에게 연락을 취해 업무 협조를 요청했고 양 언론사는 김대중 미국 비자금 취재에 협업을 이뤄갔다.

 다음기사는 지난 2020년 5월에 <월간조선>이 보도한 내용이지만 '역사적 기록물'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어 본지가 재게재한다. 이 기사에서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재판 기록 등)은 본지가 편집인 명의로 주석을 달았다. 이점 <월간조선>측의 양해를 바란다. 편집자 주






                        국정원이 입수한 김대중 미국비자금 관련 1억달러 수표 사진.  이 수표는 김대중의 3남 김홍걸의 계좌에서 발행됐다.



최초로 공개되는 ‘중국 비자금 첩보’ 내용

 

《월간조선》은 국정원과 국세청이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미국 내 비자금을 추적(DJ를 뜻하는 일명 ‘데이비슨 공작’)하면서 작성한 전문(電文)과 보고서 등이 담긴 비밀 자료를 입수했다. 비자금 액수(추정치) 등은 그간 본지(本誌)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추적 과정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 자료에는 《월간조선》(2020년 4월호)이 공개한 ‘1억 달러 수표’와 관련 있는 DJ의 미국 서부 비자금 추적 과정뿐 아니라, 동부 비자금 추적 과정도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지난 14년간 설(說)로만 떠돌던 동부 비자금의 구체적인 액수와 조성 방법, 관련 계좌번호까지 적혀 있어 주목된다.


‘DJ 미국 내 비자금 의혹’은 국정원・국세청뿐 아니라 미국 FBI와 IRS(미국 국세청)도 함께 조사를 벌였다. 자료에는 FBI와 IRS가 DJ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이 미국 유력 정치인에게 흘러 들어간 사실을 포착한 정황도 있다. 미국 당국은 ‘대형사건’이라며 이 사안을 중대하게 받아들였다.


이렇듯 한미(韓美) 양국의 DJ 비자금 추적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숨 가쁘면서도 흥미롭다. 지금부터 국정원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보도록 하자. 

DJ 비자금 추적은 2009년 5월경 국정원이 중국과 미국에서 들어온 첩보를 입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먼저 중국 내 첩보 내용이다. 이 ‘중국 첩보’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작성한 전문(電文)을 자료에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3남 중국 내 비자금 관련자: 김진근, 박금숙, 김광호.


■ 09. 5. 北 ‘○○○’ 간부 ○○○으로부터 “데이비슨이 북경에 동방가리화상무(東方可利華商貿)를 설립하고 인민폐 40억 위안(5억 불, 한화 6000억 상당)의 비자금을 확보했다”는 첩보를 제보(받았다). 이후 ○○○은 “첩보 원(原) 출처가 동방가리화상무 바지사장 김광호”라고 추가 제보.


■ 추적 결과, 동(同) 회사가 09. 6. 10. 설립된 회사(자본금 인민폐 50만 위안, 한화 8900만원)로 ‘성성(星城)국제빌딩’ 17층에 소재해 있으며 동사(同社) 대표는 ‘데이비슨’ 측근이자 동교동계와 친한 김진근(66세·심양○○호텔 사장)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김진근의 고향 후배인 상기(上記) 김광호가 대표 행세를 하고 있으며….


■ 데이비슨 부부 개업식 참석. 동사 내 3남(男) 사무실 소재 동사 회계 3남에게 보고. 바지사장 김광호가 3남의 측근으로 활동하는 등 동사와 데이비슨의 연관성을 확인.


■ 동사 입주 빌딩의 소유주가 김진근의 처(妻) 박금숙(조선족)이고 이들 부부가 데이비슨….


전문의 핵심을 요약하면 ‘DJ가 5억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확보했고, DJ뿐 아니라 그의 3남이 관련된 동방가리화상무는 문제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는 회사’라는 것이다.



동방가리화상무의

‘감사(監事)’는 ‘김홍걸’




 ‘동방가리화상무’의 임원구성. 첫 번째 인물과 두 번째 인물은 국정원 전문에 등장하는 김진근과 김광호다. 맨 마지막 ‘감사’로 등재된 ‘金弘杰’은 DJ의 삼남(三男) 김홍걸씨다. 사진=동방가리화상무 홈페이지 캡처




중국에서 들어온 DJ 비자금 관련 첩보는 국정원을 긴장시켰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액수를 보고받고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원세훈 원장은 최종흡 3차장을 불러 ‘DJ 직계가족의 국내 차명계좌 확인’부터 지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세훈 원장은 국내 DJ 비자금에 방점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하반기, 국정원 해외첩보망은 ‘DJ 아들 김홍걸의 비자금이 중국 베이징 무역회사(전문에 기재된 ‘동방가리화상무’로 추정)를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취지의 첩보를 또다시 보고했다. 중국 내에 5억 달러가 있다는 보고에 이어, 그중 일부가 북한으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첩보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중국 첩보 전문에 담긴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짧은 전문임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가장 주목할 대목은 동방가리화상무라는 회사다. 이 회사는 지금도 실존하고 있다.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면, 동방가리화상무는 한국산 식품, 주방용품, 유아용품 등을 수입해 중국에 파는 일종의 무역회사다. 기자는 회사의 임원 구성에서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金进根 执行董事

金光镐 经理

金弘杰 监事



첫 번째 인물과 두 번째 인물은, 국정원 전문에 등장하는 김진근(집행동사-우리의 상무이사 격)과 김광호(경리)다. 그럼 맨 마지막 ‘감사’로 등재된 ‘金弘杰’은 누굴까. 그는 DJ의 삼남(三男) 김홍걸씨다. 앞서 《월간조선》(2020년 4월호)은 DJ 비자금, 특히 김홍걸씨로부터 나온 것으로 의심되는 1억 달러 수표 사본을 공개했다. 


김홍걸씨는 DJ 미국 내 비자금 의혹에 핵심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홍걸씨가 동방가리화상무의 회계를 ‘바지사장’ 김광호로부터 보고받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김홍걸씨는 동방가리화상무의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첩보 전문에는 ‘데이비슨 부부 개업식에 참석’이라고도 적혀 있다. 


이 회사 ‘개요’에 따르면, 동방가리화상무는 2009년 2월 설립돼 같은 해 6월 10일 등록됐다고 홈페이지에 기재돼 있다. 전문의 내용대로라면, 이 사이 DJ 부부가 중국을 방문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2009년 5월 4일, DJ 부부는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다. DJ는 5월 6일(현지 기준) 베이징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시기와 첩보의 정황상 DJ 부부는 이때 동방가리화상무 개업식에 참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친북단체 간부가 

‘DJ 비자금’ 제보?




                          2009년 5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이징대학에서 특강했다는 한 언론 기사. 사진=프레시안 캡처



그럼 김진근·박금숙 부부는 누굴까. 이 두 사람은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다만 김진근씨가 국내 언론에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2003년 중국 뤼순(旅順)에 DJ 동상이 세워졌는데, 이 동상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가 바로 김진근이다. 단신(短信)으로 나온 기사에서 김진근은 ‘재중(在中) 사업가’로 소개됐다. 


김진근의 아내 박금숙은 2008년 국내 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금숙씨는 중국에서 검사(檢事)였다”며 “별명이 ‘박도끼’로 불릴 정도로 아주 매서운 검사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진근씨는 DJ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DJ를 도우면서 DJ 측근들과도 어울렸다고 들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김진근·박금숙 부부를 DJ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인물로 봤다. 동방가리화상무는 DJ 비자금과 관련 있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로 판단했다. 첩보 전문에는 다소 뜻밖의 내용도 담겨 있다. ○○○이라는 친북단체 간부가 DJ 비자금 관련 제보를 국정원에 했다는 것이다.


‘첩보의 원 출처’가 ‘동방가리화상무 김광호’라고 전문에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은 비자금 관련 첩보를 김광호에게서 전해 들은 걸로 추정된다. 참고로 ‘데이비슨 공작’에 관여했던 이○○ 전 국정원 처장은 박금숙 등 동방가리화상무 관련자들을 상대로 비자금 정보를 캐기 위해 ‘사이버 점거’ 시도를 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적이 있다. 


‘사이버 점거’란 해킹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국정원이 해킹을 통해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국정원이 입수한 중국 첩보는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 역시 상당 부분 첩보의 내용과 일치한다.




미국 첩보의 핵심은

‘13억5000만 달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




중국 첩보가 들어온 지 약 반년이 지난 2010년 상반기, 국정원 소속 미국 시애틀 도○○ 정보관도 ‘DJ 비자금’과 관련한 한 통의 전문을 국정원 본부에 보고한다. 도 정보관의 보고 내용은 미국 내 비자금 첩보로, 이는 그간 본지가 여러 차례 보도했던 것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싣는다.


〈2010년 상반기경 국정원 1차장 산하 해외공작국의 시애틀 정보관 도○○의 보고다. 한국계 미국인인 테리 스즈키의 보고 내용이다. 미국 내 DJ 비자금은 서부에 6억5000만 달러, 동부에 7억 달러가 있다. 동부는 ○○○○ 회장, 서부는 한스 루이가 관리한다. 서부 비자금은 전성식, 한스 루이, 이○○, ○○기업 전 회장이 함께 인출해야 출금이 가능하다. 그중 1억 달러가 미국 페이퍼컴퍼니, 한국 지주회사, 김홍걸이 운영하는 중국 북경·심양·청도 소재 3개 회사, 중국 연변과기대를 순차로 거쳐 북한 평양과기대에 송금되려 한다.〉


위 1억 달러는 《월간조선》(2020년 4월호)이 공개한 바로 그 수표 사본을 말한다. 본지는 테리 스즈키, 전성식, 김진경, 그리고 김홍걸 등이 문제의 1억 달러 수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요약하면, 미국 내 DJ 비자금 첩보를 국정원(도○○ 정보관)에게 제공한 테리 스즈키(한국인)는 김홍걸의 1억 달러 투자와 관련된 중국 선양(瀋陽) 월드트레이드센터(WTC) 건립 사업에 참여했다가 중단돼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다.


문제의 1억 달러는 김홍걸로부터 나왔다는 게 스즈키의 주장인데, 이 돈은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LHL 투자회사에 입금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스즈키는 1억 달러 수표뿐 아니라 DJ 비자금 관리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WTC 건립 사업은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이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중단됐다.


사업자금의 출처가 DJ 비자금이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그 바람에 스즈키는 200만 달러의 금전적인 손해를 봤다면서 그에 불만을 갖고 있다가 DJ 비자금 관련 정보를 국정원에 제보한 것이다. 


스즈키의 법률대리인이 작성한 내용증명에 따르면, 국정원 전문에 등장하는 전성식은 DJ 일가와 친분이 깊고 WTC 사업에도 깊게 관여한 인물이다. 한스 루이(Hans Lui)는 전성식의 후배라고 한다. 


이처럼 국정원은 선양 WTC 사업과 관련해 2009년 9월부터 2010년 5월까지 도○○ 정보관을 통해 그 내용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은 스즈키로부터 1억 달러 수표 사본을 제공받았다.



원세훈 “국내 것만 가지고 

불가능 … 북한 유입 가능성”




                                  원세훈 전 국정원장.



2010년 5월경, 미중(美中) 양국으로부터 넘어온 첩보를 통해 비자금 존재를 확신한 원세훈 원장은 최종흡 차장을 다시 불렀다. 원세훈 원장은 “국내 것만 가지고 (그 정도 액수의 돈이 조성)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차장에게 “북한 유입 가능성도 유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시기 최종흡 차장은 이미 해외공작국 등을 통해 스즈키가 제보한 비자금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 두 달 전인 2010년 3월경, 원세훈 원장은 이현동 국세청 차장(후에 국세청장)과 비자금 추적에 관해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수사자료에 기재돼 있다. 국세청은 2009년 11월,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개소(開所)한 바 있다. 이 센터는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불법적인 해외재산 반출 행위가 사전 계획하에 이뤄져 통상적인 정보수집 차원에서는 예방에 한계가 있어 센터를 만든 것이다. 원세훈 원장은 DJ 비자금을 추적하는 데 센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종흡 차장에게 센터장을 겸하고 있던 이현동 차장을 만나보라고 했다.



‘서부 비자금’은 테리 스즈키,

‘동부 비자금’은 브라이언 조



원 원장의 지시를 받은 최종흡 차장은 이현동 국세청 차장과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국장·후에 국세청 차장)을 만났다. 만난 시기는 원세훈 원장이 최종흡 차장에게 비자금 추적 지시를 내린 직후인 2010년 5월로 추정된다.


이 자리에서 박윤준 국장은 자신이 미국에서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냈던 IRS 소속 브라이언 조(한국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브라이언 조가 DJ 비자금 추적에 나설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최 차장에게 한 것이다.


국정원과 국세청의 요청을 받은 IRS의 브라이언 조는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DJ 동부 비자금 추적에 나선다. IRS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선 시점은 대략 2010년 5월에서 8월 사이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미 양국은 비자금에 관한 상당한 조사를 했고,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브라이언 조는 비자금 관련 사항을 파악해 국세청(박윤준 국장)에 보고했고, 박윤준 국장은 브라이언 조의 보고 내용을 국정원에 보냈다. 국정원에서는 김○○ 방첩국장이 브라이언 조가 건넨 DJ 비자금 관련 각종 영문 자료들을 분석한 것으로 수사자료 등에 기재돼 있다.


이와 함께 최종흡 차장은 도○○ 정보관이 보고한 전문에 적힌 13억5000만 달러 추적에도 나섰다. 최종흡 차장은 김○○ 국정원 방첩국장을 통해 도 정보관이 테리 스즈키로부터 비자금 관련 물증 파악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했다.


한마디로 테리 스즈키는 DJ 미국 내 비자금 중 서부 비자금을, 브라이언 조는 동부 비자금에 관한 정보를 추적해 국정원·국세청에 제공하는 해외정보원이었던 셈이다. 중국 내 비자금 추적은 동방가리화상무 간부들을 상대로 해킹 공작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 처장이 계속 임무를 맡았다.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현 TV조선 기자) 



 2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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