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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가짜 탈북자들에게 농락 당하고 있다(1탄)
  • 임종규 • 윤병진 기자
  • 등록 2024-09-12 12: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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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로 위장한 중국 국적(조선족) 조진혜 前 재미탈북민연대 대표가 대표적 사례





미국 정부는  한국 경유 않고 입국

하는 탈북자들 철저히 조사해야



미국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렸다. 현재 미국 정부는 미국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을 난민 또는 망명자 신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통해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2022년 9월 현재 총 2백 24명. 문제는 이 가운데 탈북자들로 위장한 조선족들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을 통해 미국에 정착한 3백여(비공식 집계) 탈북자의 경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국가정보원이 탈북자들에 대해 워낙 강도 높은 신분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그들을 독방에 구금하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철저한 조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사가 완전히 끝나야만 통일부 산하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으로 보낸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가족이 한국에 이미 정착해 있는 경우는 며칠 만에도 조사를 끝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달 이상 조사 할 때도 있다 "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탈북자로 위장한 조선족이나 공작원(간첩)들을 색출해 낸다

"면서 “중국 국적의 조선족은 적발즉시 추방하며, 공작원들은 강도 높은 장기 조사에  돌입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신분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중국, 태국 등 제 3국에서 직접 미국에 입국, 정착한 탈북자들에 대해선 적지 않은 의혹의 눈길이 쏠린다. 이는 탈북자들 다수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국을 통해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A 씨는 “중국 등지에서 직접 미국에 온 탈북자들 중에는 가짜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한국 국정원처럼 철저한 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나 같은 사람들은 제 3국을 통해 미국에 들어오는 탈북자들과는 깊은 교류를 갖지 않는다”면서 “이들 중에는 탈북자라고 주장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탈북자 B 씨는 “우리는 제 3국 경유 탈북자들 중 일부가 (법적으로 중국인인) 조선족이라고 확신한다”면서 “이 중에는 북한 공작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미국 정부가 이들을 입국 시키는 과정이 너무 허술해 놀랄 정도”라면서 “북한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작원들을 미국에 침투 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온 탈북자들 사이에 중국 

국적 조선족들도 섞여 있어



미국정부는 탈북자들을 ‘망명자’ 또는 ‘난민’으로 취급한다. 종교나 인종,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단체 소속 등의 문제로 모국에서 처벌받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미국 내에서 난민이나 망명 신청이 받아 들여지면, 해당자는 고국으로 강제 송환 되지 않는다. 


또 사회보장번호를 받고 미국 안에서 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미국에 데려오거나 외국으로 여행할 수도 있다. 망명 신청자의 경우 자격을 인정받으려면 자신이 고국에서 이미 처벌 받았거나 돌아가면 처벌받을 위협이 크다는 점을 명확하게 증명해야 한다.



미국의 탈북난민 수용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조선족들이 탈북자들로 위장 입국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2006년 연방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미국 입국 탈북자들의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탈북자 출신 망명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마영애 씨(국제탈북민연대 미주대표·뉴저지 거주)이다. 과거 마 씨는 노무현 정권의 국정원으로부터 폭행, 폭언, 여권 말소 등의 위협이 인정돼 망명이 받아 들여졌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 자신의 진술과 서류 작성에 많이 의존해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는 이들을 돕는 변호사들도 많다.


미국에 거주하는 2백여 탈북자 대부분이 이 과정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민이나 망명 자격을 부여하는 연방 국토안보부나 법무부에는 한국 국정원처럼 북한과 관련한 정보나 자료가 많지 않다. 또한 업무가 산적해 있다.



  태국 이민국 구치소에 수용 중인 탈북 난민들의 모습. 한국을 거치지 않고 제 3국에서 미국으로 직행한  탈북난민들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국정원에서 조사 받았으면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미국 정부는 잡아내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을 일부 조선족들이나 북한 공작원들이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등지에서 대북 선교활동을 하는 일부 목회자들이 이들의 거짓말에 속아 보증인 역할을 하는 것도 문제점 중의 하나 이다. 


탈북자 C 씨는 “미국 거주 탈북자들 중 상당수가 몇몇 선교회나 목사들의 도움을 받아 입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개중에는 조선족의 거짓말에 속아 그들을 미국으로 입국 시킨 목사들도 있다”고 밝혔다. C 씨는 “미국 정부가 북한 출신 난민 또는 망명 신청자들에 대해선 특별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미국 정부가 국정원의 협조를 얻으면 쉽게 해결 될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 조진혜는 탈북자가 

아닌 조선족이라고 방송



2018년 북한의 선동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재미있는’ 방송을 내보냈다. 북한을 ‘배신’한 탈북자들에 대해 험담과 막말을 하면서 “재미탈북민연대 대표 조진혜는 북한출신이 아닌 조선족”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북한의 선동매체 우리민족끼리〉 는 '조진혜는 위장 탈북자'라고 보도했다. 조진혜와 동생으로 알려진 조은혜는 전혀 닮은 모습이 아니다. 가운데 조진혜의 '가짜 엄마' 한송화. 사진 = 북한방송〉 




북한이 지금까지 탈북자들을 지칭하면서 단 한 번도 “북한 주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특정인물을 거론하며 ‘공화국 인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김순화라는 증인까지 등장시켰다. 이 방송의 조진혜 관련영상은 아직도 ‘유튜브’에 떠 있는 상태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상을 본 탈북자들이 “다른 것은 다 거짓말인데 이 부분만은 진실”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북한방송을 믿지 않는 이들이 이번만큼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조진혜(1987년생.본명 조송희.미국명 에스더 조)를 두고 지난 7~8년간 가짜 논란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가짜 탈북자로 드러난 조진혜 전 재미탈북민연대 대표.




조진혜에 대한 논란의 발단은 지난 2011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은 조진혜와 그의 어머니로 알려진 한송화(1959년생·본명 한미송)를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는 탈북자 D 씨(여)의 증언이다.

 “어느 행사장에서 한송화, 조진혜 모녀를 우연히 만났다. 나는 한송화와 함경북도 무산의 한 동네에서 살던 사람이다. 무산은 인구가 3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동네이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한송화에게 아는 척을 했다. 


나는 한송화가 나를 보고 반가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한송화는 냉정하게 ‘당신은 어떻게 미국에 왔는가’라고 물으며 나를 멀리 하려 했다. 그러면서 딸이라는 조진혜에게 나와 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이상했다.




                        중국 도문의 탈북자 수용소. 조진혜와 P 씨는 이 곳에서 8개월간 함께 생활했었다. 




또한 한송화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맏딸(실제 조송희)은 행방불명 상태이고, 둘째 딸 조은혜(1991년생·본명 조민희.미국명 그레이스 조)는 당시 미국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송화 옆에 있던 조진혜가 행방불명 됐다던 맏딸인 줄 알았다. 나는 이 점이 궁금해 물어봤지만 두 사람은 끝내 대답을 안 했다”

(편집자 : 평소 조진혜는 자신의 형제가 7조은혜는 형제가 6명이라고 엇갈린 증언을 했음)


또 이 무렵 한송화의 시누이(한국 거주 탈북자)를 미국에 초청한 적이 있다는 탈북자 박모 씨는 "시누이가 '우리 오빠 부부에게는 조진혜와 같은 딸이 없다. 오빠 자식은 3남매 뿐'이라고 분명히 얘기했다"고 증언했다.



                        한송화 • 조진혜 • 조은혜가 함께 거주하던 중국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 지역의 모습. 




박 씨의 한송화, 조진혜 목격담과 김 씨의 증언은 탈북자들 사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이즈음 있었던 또 다른 증언은 더 충격적이다. 

다음은 탈북자 D 씨가 본지 취재진에게 증언한 내용이다. 

"나는 2012년 무렵 탈북자 김모 씨(현재 목사)로부터 조진혜 재미탈북민연대 대표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었다. 북한에서 모종의 임무를 갖고 중국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김 씨는 2004년, 조진혜와 함께 중국 도문(Tumen)의 감옥에 8개월 간 함께 수용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 씨는 탈북자가 아닌 북한 기관원이었다. 조진혜는 김 씨에게 자신을 탈북자라고 소개했지만 언행이 탈북자 같지는 않았다고 하더라. 4번이나 북송됐었다는 그가 북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탈북자라는 조진혜가 감옥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점이 너무 이상했었다고 했다. 그녀는 감옥 안에서 샤워까지 마음대로 했단다.


중국 도문 감옥은 탈북자들이 북송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다. 당시 도문 감옥에 머물던 다른 탈북자들은 모두 북송되는데 조진혜만 북송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한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가 ‘조진혜 X의 밀고 때문에 체포를 당했다’고 그녀를 원망하며 북송 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조진혜의 언행이 하도 이상해서 김 씨가 친분이 있던 교도관에게 그녀에 대해 물어봤더니 ‘쟤는 우리 정보원이다. 한건 당 3백∼5백 위안(원)을 받고 일을 한다’고 놀라운 말을 했다" 

김 씨는 뉴저지 P교회의 도움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현재 H선교회 대표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한(전 워싱턴한국일보 기자 • 현 필라델피아 '코리안 파워' 발행인)씨는 조진혜와 관련해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줬다.

"나는 2013년 11월 러시아 벌목공 출신 탈북자 김호(가명)씨를 취재해 탈북자들과 관련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 김 씨는 기자에게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들 가운데 조선족 출신도 상당할 것'이란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을 기사화 시켰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본 조진혜가 신문사로 찾아 와 격렬하게 항의하며 행패를 부렸다. 나는 조진혜와 관련된 기사를 전혀 쓴 적이 없었는데 그녀는 앞으로 자기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를 쓰면 고소 하겠다고도 했다. 마치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나 할까”



조진혜가 밀고해 북송 당한 국군

포로는 6사단 출신 이동진



P 씨의 증언을 토대로 취재에 나선 본지는 조진혜가 밀고해 북송 당한 국군포로의 신원을 밝혀냈다. 본지 취재에는 한국 (사)6.25국군포로가족회(대표 손명화)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78세의 노구를 이끌고 탈북했다가 조진혜의 밀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돼



 

그가 1926년생이니까 2004년 탈북당시 이미 78세였다. 이동진 씨가 생존해 있다면 지금 96세(2022년 기준)이다. 국군포로가족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13년까지 이동진 씨의 생존이 확인됐지만 그 이후로는 생사를 모른다"면서 "그가 북송 당한 이후 가족 4명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선 가족들의 생사도 확인이 되질 않고 있다"며 "2004년 그의 북송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이동진 씨의 군번은 0344419이며 1950년 10월 29일 전사자로 처리돼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위패가 안치돼 있다. 이는 국방부가 행방을 알 수 없는 국군포로를 모두 전사자 처리 했기 때문이다. 


6.25 당시 이동진 씨의 소속은 육군 6사단(청성부대) 이었으며 계급은 이등병(이병)이었으며 입대 전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군 월곡면 노상동이었다. 그는 많은 한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손명화 대표는 "이동진 씨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조진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조진혜를 결코 용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동진 씨의 북송에 대해 과연 조진혜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지난 2014년, 이병한 기자가 공식 석상에서 이 문제에 대해 조진혜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당시 조진혜는 이동진 씨의 북송을 인정하면서도 "그 할아버지를 도와주려다 그렇게 됐다"고 변명했다. 이 한마디는 조진혜가 지금까지 이동진 씨와 관련해 유일하게 남긴 말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시 유엔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중 포로로 잡히거나 실종된 한국군은 8만2천여명. 북한은 이 중 8천3백여명만 남한으로 송환했다.

생환 포로들은 "북에 억류된 7만여 국군포로는 '괴뢰군 포로'라는 오명을 안고 불발탄 처리, 탄광의 발파공, 벌목공 등 위험하고 고된 작업을 강요받으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생존 국군포로는 5백여명(추정치).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들의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고 있다. 북한 눈치를 보는 문재인 정부가 국군 포로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지금도 북한에는 결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살고 있다.  



조진혜의 정체를 북한 방송이
다시 확인해 줬다   


 

조진혜 정체에 대한 논란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그러다가 ‘우리민족끼리’ 방송과 본지의 본격적인 취재로 인해 그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선동매체 보도가 본지의 취재 의욕을 부채질 하게 된 셈이다. 조진혜의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이 아닌 중국 길림성 화룡시(허룽시)로 드러났다. 화룡시는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속하는 인구 22만명의 중소도시이다.



                             서울을 방문한 위장 탈북자 조진혜(왼쪽)와 가짜 어머니 한송화. 




화룡시는 두만강 접경지역으로 예부터 조선인들이 많이 살았으며, 현재도 조선족이 시 인구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조진혜도 조송희도 아닌 채 씨 성(姓)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족 조진혜가 어떻게 미국까지 오게 됐을까. 원인은 한송화(한미송)에게 있었다.


다음은 북한 우리민족끼리〉 방송에 등장하는 김순옥의 증언 내용이다. 북한방송을 모두 신뢰 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신빙성이 큰 대목이다. "무산에 살던 한송화는 탈북 해 중국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향) 명단촌 소재 채승현의 집에 딸(조은혜)과 함께 얹혀살게 됐다. 한송화는 채승현이 집을 비운 사이 채승현의 재산을 다 팔아먹고 채승현의 딸(자칭 조진혜)을 데리고 도주했다"


이후 이 세 사람은 탈북자돕기 운동을 하는 윤요한 목사(시애틀)의 도움으로 2008년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 버지니아에 정착하게 됐다. 다음은 지난 2001년 조진혜, 조은혜를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는 변인복 목사(시애틀 사랑의 교회 담임)의 증언이다.


"나는 지난 2001년 5월 윤요한 목사의 안내를 받아 길림성 화룡시 모처에서 탈북 어린이 8명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고아라고 밝힌 이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13세 소녀(조진혜)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인지 삐적 말랐는데 유독 이 아이 만은 포동포동 살이 쪄 있다. 


이를 보며 나는 '이 아이가 정말 탈북자가 맞나'라고 의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조진혜가 동생이라면서 10세 정도의 여자아이(조은혜)를 소개했는데 언니와는 다르게 몸매가 앙상했다. 탈북난민을 돕는 윤요한 목사는 지금까지 60여명의 탈북자를 한국 또는 미국으로 입국 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진혜- 한송화 같은 사람들이 끼어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변 목사의 증언으로 미뤄봤을 때 한송화.조진혜.조은혜는 이미 2001년 5월 이전 길림성 화룡시에서 만나 탈북자 모녀로의 위장을 공모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작전은 7년 넘게 걸려 성공을 이뤘다. 이들이 2008년 3월 유엔난민 지위를 얻어 무사히 미국에 입국했기 때문이다. 이 사이 조진혜는 중국 공안의 정보원 활동을 하며 2004년 탈북 국군포로 이동진 씨를 밀고, 북송 시키기도 한 것이다.


미국에 와서 이런 저런 일을 몇 개월 씩 전전하던 조진혜는 지난 2012년, 25세의 나이로 재미탈북민연대를 창립했다. 이 과정에서 조진혜는 누군가의 조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조진혜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는 버지이나주 리치몬드에 거주하는 탈북자 김모(여)씨로 그가 조진혜를 조종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무튼 조진혜는 이 단체를 통해 마침내 고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다.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많은 후원금이 들어 온 까닭이다. 공식적으로 조진혜는 이 단체에서 2천 달러의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후원금 사용 내역은 2015년 중반 이후 알 길이 없다. 2012년 재미탈북민연대(NKinUSA)를 설립하면서 조진혜의 거짓말은 날개를 달았다. 


이해 3월 조진혜는 한송화와 함께 연방의회 청문회에 나가 북한인권상황에 대해 증언 했다. 또 2014년 3월에는 부시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북한의 실상을 들려주기도 했다. 

탈북민연대를 설립한 후 그는 각종 강연, 간증 등을 통해 명성을 높였다. 한국에 까지 가서 탈북자 행세를 하며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의 방송에 출연 했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너무 나도 그럴듯하게 하고 다녔다.


심지어 조진혜는 2017년 5월, 조지아주 애틀란타 소재 모 신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탈북자 선교에 앞장 서겠다"고 밝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철저한 신분세탁을 위해 앞으로 선교사와 목사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진혜가 유명해지면 유명해 질수록 탈북자들 사이에선 그에 대한 의혹이 깊어갔다.




                   고미옥 • 오순금(왼쪽부터) 씨가 2014년 9월 버지니아에서 위장 탈북자 조진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4년 9월 12일, 한국에서 온 탈북여성 오순금, 고미옥 씨는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미탈북민연대의 조진혜 대표는 탈북자가 아니고 조선족”이라고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미옥 씨는 함경북도 무산군 남산 노동자구에서 한송화와 10년 간 한 동네에서 살았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고 씨는 “한송화에게는 두 딸과 91년 수영하다 물에 빠져 숨진 맏아들 조정국(당시 6세), 3명의 자녀만 있었을 뿐”이라면서 “애당초 조진혜라는 자녀는 없었다”고 밝혔다.

오순금 씨는 "2005년 3월 중국 도문 수용소에 조진혜와 함께 수용된 적이 있었다"며 “내가 수용 직후 북송 된 데 비해 먼저 들어온 조진혜는 북한 온성 감옥으로 결코 넘어간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 씨는 “지난 7월 조진혜와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게 북송 된 때가 언제였는지 묻더라”며 “4번이나 북송 당했다는 사람이 죽음에서 빠져나온 때를 기억 못한다는 게 의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진혜와 한송화는 "가짜 탈북자 의혹을 불식(拂拭) 시키겠다”며  유전자 검사를 받고 결과를 언론에 공개했다.


2014년 11월 7일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버지니아 애난데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차례의 유전자 분석결과 99.99%의 일치로 나타났다”며 “우리는 모녀 사이가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유전자 검사 현장에 참석한 한 언론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분명 그들은 구강 내에서 유전자를 채취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머리카락을 갖고 유전자를 검사했다고 했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가. 유전자 검사 용지는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쉽게 구 할 수 있다. 나는 그녀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결코 믿을 수가 없다. 그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종규 선임기자윤병진 기자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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