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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통신> 윤석열은 왜 자폭했을까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등록 2025-04-21 14:05:05
  • 수정 2025-04-21 14: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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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의 ‘무속 세계’ ‘야매 정치’에 휩쓸리다 계엄령 선포 ••• 정통파 멘토참모 말 안 들어


앞으로 어디에 있든 증오 선동하지 말아야
••• 참회하며 ‘공정과 상식’ 영역으로 귀환하길






넷플릭스가 탐낼 만한  ‘대통령의 순애보’

늘 글로벌 시장을 향해 침을 흘리는 넷플릭스가 탐을 내고 이미 돈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아내를 지키기 위해 자폭한 어느 대통령의 이야기다. 

이 정치 드라마의 본질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똑똑한 척하면서 어리석은 일탈을 일삼는 아내에 대한 눈물겨운 순애보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실화 이야기 소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악랄하고 교활하고 추접스러운 인물로 그려지는 정적(政敵)은 독립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캐릭터가 아닌가.

김건희는 스캔들의 여왕이었다. 대통령 부인이 된 이후 김건희를 괴롭힌 건 이전에 저질렀던 경력 조작 의혹, 논문 표절 의혹, 주가조작 의혹 등이었지만, 그는 결코 주눅 들지 않으면서 새로운 작은 스캔들을 양산해 냈다.

대부분 공사(公私) 구분 의식이 없어 벌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계엄을 선포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정작 문제는 김건희가 윤석열을 V2로 밀어낸 V1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내가 정권 잡으면 무사 못 할 것”이라거나 “남북 문제에 내가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라는 말도 했다.

윤석열의 머릿속에 ‘바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것이 그를 진짜 바보로 만든 가스라이팅의 시작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주말이 무섭다”며 주말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윤석열이 한남동 관저만 다녀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에겐 국가 안보보다 ‘김건희 안보’가 더 중요했다.

김건희 명품백 사건으로 총선 참패를 걱정하는 참모들에게 “선거 져도 상관없다”고 했으며, 대통령실 수석이 ‘김건희 특검법’ 관련 내용을 보고하자 “차라리 나를 탄핵하라고 해라”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그의 뜻대로 총선 참패와 탄핵이 일어났지만, 그는 결과엔 수긍하지 않았다. 총선날 저녁, 일부 참모가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몇 분 일찍 듣고 보고하자 윤석열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럴 리가 없어! 당장 방송 막아!”(중앙일보 2025년 4월7·8일자)



'바보' 윤석열은 참모나 측근들의 조언 보다 부인 김건희의 말을 더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2023년 9월 18일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차 뉴욕 JFK국제공항에 도착한 윤석열과 김건희의 모습.


윤석열은 그런 식으로 탄핵에도 결사 저항했다. 무엇이 그의 정신 상태를 지배했던가? 악령인가? 그는 김건희의 유튜브 중독을 물려받아 레거시 미디어를 완전히 불신하면서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에 따라 국정을 운영했다. 유튜브는 사실상 음모와 예언이 흘러넘치는 무속의 세계였다.

무속 코드를 매개로 김건희와 동맹을 맺었던 명태균은 윤석열은 ‘장님 무사’, 김건희는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알아봐준 김건희가 ‘사람 볼 줄 아는 눈’이 있다고 했지만, 윤석열에겐 ‘5년을 버틸 수 있는 내공’이 없다며 대통령에 취임하면 “2024년 총선에 개헌하면서 그때 딱 물러나면 된다”고 했다.

명태균의 예언에 대해 놀라운 혜안이라고 감탄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위험한 착각이다. 그는 “내가 만든 정권 내가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외친 희대의 협박범이었다. 그가 실천한 정치는 ‘야매 정치’였다.

야매는 ‘숨다’ ‘어둡다’ ‘암거래’ 등의 뜻을 가진 일본어 ‘야미(闇, やみ)’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야매 정치’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정도가 아니라 그 위에서 조깅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명태균과 김건희는 이 방면의 달인이었다.

명태균의 전언에 따르자면, 김건희는 윤석열에게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 맞아?”라고 혼을 내기도 했다는데, 이에 절로 탄식이 나온다. 김건희는 윤석열이 ‘야매 정치’에 무능한 걸 타박한 것이었는데, 이게 참 기가 막힌 이야기다.

‘야매 정치’가 들통나기 시작하자 명태균은 김건희 부부에게 보호를 요구했으며, 이에 대응한 것이 계엄령 선포였을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윤석열은 자신을 배신했다. 자신들의 온갖 비리에 무감각했던 문재인 내로남불 정권을 ‘공정과 상식’이라는 원칙 하나로 벌벌 떨게 만들었던 천하의 윤석열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왜 자신에게 ‘야매 정치’를 요구하는 김건희에게 휘둘리면서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단 말인가?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파면과 함께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 윤석열의 갱생 가능성, 아니 그가 역사에서나마 살아남는 법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에 정권 거저 줍게 만든 죄 커


윤석열의 실패를 보면서 많은 이가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어떤 경험이냐가 더 중요하다. ‘야매 정치’ 경험이 많고 그걸 정치라고 믿는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

윤석열은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들을 다 뿌리치고 무속형 ‘야매 정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멘토로 삼았다. 그 멘토그룹의 좌장이 바로 김건희다. 이는 윤석열의 죄마저 김건희에게 덮어씌우는 마녀사냥인가? 그렇지 않다. 모든 최종 책임과 가혹한 비난의 몫은 윤석열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자.

‘야매 시장’의 반대편에 ‘정통 시장’이 있다. 그 어떤 분야에서건 ‘야매 시장’의 문법은 전혀 다른 것이어서 ‘정통 시장’의 고수일지라도 그곳에 가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윤석열이 정통파 멘토·참모·보좌진과 함께 국정을 운영했다면, 그는 적어도 ‘공정과 상식’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이룰 수 있었다. 윤석열에게 지지를 보낸 보통사람들의 뜻은 무엇이었던가?

 


영남일보 4월7일자에 실린, 대구 칠성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운영 중인 김문자 할머니(88)의 말을 들어보자.

“수십 년째 시장에서 장사만 해 정치를 잘 모르는 나도 검찰총장 시절 당신은 참 강직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정치 경험이 없어서인지 때 묻지 않았고, 순수한 면도 보였어요.

그래서 믿음이 갔지요. 유례가 없잖아요, 정치 경험 없는 대통령은. ‘정치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치들과는 한참 달랐지요. (중략) 암만 답답해도 그렇지…와 그랬을꼬?”

윤석열은 지지자들에게만 죄를 지은 게 아니다. 민주당에도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든 큰 죄를 저질렀다. ‘정권’을 거저 줍다시피 한 민주당 정권의 행운은 우리 모두의 불운이자 비극이다. 윤석열은 앞으로 감옥에서건 그 어디에서건 행여 증오를 선동하지 말라.

그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참회, 그리고 참회, 또 그리고 참회다. 유튜브 무속 세계에서 탈출해 ‘공정과 상식’의 영역으로 귀환하라. 그게 바로 그가 진정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은 여생을 오직 그 일에만 바치길 바란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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