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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칼럼] 트럼프 독트린이 미국의 품위를 망치고 있다
  •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 등록 2025-02-25 17:02:24
  • 수정 2025-02-25 17: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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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닉슨 급으로 외교안보 급선회 ••• 지나친 실적주의에 美 국민 자긍심 상처


                   트럼프는 외교 안보 전략의 방향을 크게 돌리는 '독트린'급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서방 언론에 권위주의적 독재자이자 약소국 침략자로 비치는 푸틴을 머리 좋고 강인한 지도자로 치켜 세우기도 했다. 

오랜 기간 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하고 강대국의 무력에 의한 횡포를 불법으로 규정해 온 국제사회는 혼란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상식적이지 않은 그의 발언은 '강한 힘'을 선호하는 트럼프 특유의 가치관에 기반한다고 보인다. 

또한 트럼프와 정부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둘 다 기업인 특유의 실적 우선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그들의 시각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관점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적 가치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적 적법성이 실종된 상태에서 그럴듯한 결과를 창출한다 해도 그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이들은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정책의 결과물을 과정에 참여한 힘 센 소수가 독식하려 들면 그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수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고 그가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명령에 의한 러시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젤렌스키가 이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시도가 있다. 

푸틴과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극력 반대해 왔다. 미국이 중심이 되어 공산권 소련의 팽창 저지를 위해 결성한 나토를 반(反)러시아 군사동맹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적성 동맹국이 러시아 코 앞까지 팽창하는 것을 결코 묵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러시아 외교 안보 정책의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몇 시간에 걸친 통화에도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반대'라는 답을 얻지 못하자 2022년 2월 전격적으로 키이우를 침공했다.

이런 일련의 맥락에서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에 침공의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푸틴 편을 들 수는 없는 일이다. 푸틴의 주장은 강대국의 일방적 시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자국의 독립을 위협하고 자주성을 부정하는 러시아로부터 국가안보를 지켜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젤렌스키는 나토 가입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키는 최선의 수단이 될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나토 가입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태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30대 초반에 연방 상원 의원이 된 이후 오랜 기간 미국의 외교 안보를 지켜봤다.

민주주의와 국제질서의 수호라는 전통적 가치에 따라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와 자원을 지원해 우크라이나를 지키려 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는 외교 안보 전략의 방향을 크게 돌리는 '독트린'급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철의 장막을 드리우는 소련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공산권을 적대국으로 지정하는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소련을 포위하기 위해 공산국이던 중국과 과감하게 손을 잡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독트린'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있지만 이미 그런 정도의 충격적인 대선회를 시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독트린'의 핵심은 무엇일까? 사실 트럼프 독트린은 미국 우선주의(MAGA)에 다름없다.

이제 외교정책도 미국에 이익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진부한 가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더욱 중요한 것은 MAGA 진영이 선호하는 정책이다. 그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과거 미국 대통령 가운데 외국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가 인기가 하락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전쟁의 수렁에 빠져 3년 만에 겨우 휴전에 합의했으나 승전을 놓친 해리 트루먼과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한 린든 존슨 대통령이 그랬다.

바이든 전 대통령도 취임 초기 아프가니스탄에서 무리하게 철수하다 인기가 하락한 경험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에서의 지지부진도 민주당의 대선 패배에 일조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을 잘 아는 트럼프는 서둘러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그의 정치적 계산기에는 시간이 갈수록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해답이 나와 있다. 이런 계산하에 트럼프는 종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제는 목표가 서면 결과를 조기에 얻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서두르는 트럼프의 추진 방식에 있다. 절차도 무시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는다. 

전쟁의 대의나 가치도 누락되기 일쑤다. 전쟁에서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한 러시아 측이 협상에 긍정적인 태도로 나오자 이에 미온적인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이는 끝까지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한국전쟁 휴전 협상에 나서지 않았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연상케 한다. 

종전 추진에 대한 국내 지지를 얻기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 대가로 희토류의 채굴권을 가져오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실속을 챙기려고 품위를 져버리는 대통령의 언행은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손실을 발생시킨다.


     지난 4일 워싱턴DC 재무부 청사 앞에 모인 시위대가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주도하는 연방정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실이란 미국이 그간 쌓아온 좋은 이미지에 바탕을 둔 소프트 파워다. 트럼프의 행태는 바로 그 파워에 치명상을 입힌다. 이런 무형의 손해를 마케팅 비용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를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과 정치적 이득을 쫓기 위해 오랜 기간 쌓아온 자산을 놓치는 것과 같다.

트럼프의 외교 노선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개혁부(DOGE)의 과격한 예산, 인력 감축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좌충우돌식 구조조정을 통해 그간 '가장 위대한 나라 미국의 연방 공무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박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일했던 국민들에게 심한 굴욕감을 안겨주고 있다. 


돈이나 유형의 재산보다 더 소중한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지각 있는 국민들은 심각한 위기의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가치의 내전 상태에 이른 미국의 상황이 살얼음을 걷듯 위태롭다.




                                               글쓴이 소개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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