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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아직도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 등록 2024-09-12 13: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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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땅굴 존재할 수 있으나 장거리 땅굴은 불가능” ••• “한국군, 최첨단 장비로 北 남침 땅굴 감시”



                   남굴사 회원들이 경기 남양주 일대에서 남침 땅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 결과 땅굴은 없었다.


“청와대 주변 땅굴 최소 84개”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 일대. 서울시청에서 직선거리로 약 55km다. 임진강변에 자리한 곳으로 육군 25사단의 관할 지역이다. 1974년 11월 15일 경계 작전에 나선 수색대원들이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 지표면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보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 중사가 땅굴임을 직감했다.


수색대원들이 이 의심스러운 구멍을 파 내려가자 이를 초소에서 관찰하던 북한군이 기관총을 쏘았다.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처음 발견한 남침용 땅굴인 ‘제1땅굴’은 너비 0.9m, 높이 1.2m, 깊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남방 1.2km)였다. 1시간이면 연대급(2000명 수준)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다.



                   1990년 3월 강원 양구에서 제4땅굴을 발견했다.


이어 ‘제2땅굴(1975년 3월 24일, 강원 철원)’ ‘제3땅굴(1978년 10월 17일, 경기 파주)’이 발견됐다. 12년 뒤에는 강원 양구에서 ‘제4땅굴(1990년 3월 3일)’을 확인했다. 이후에도 땅굴에 대한 의심과 이를 탐지하려는 노력은 계속됐지만 ‘제5땅굴’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제4땅굴 발견 이후 우리 사회에는 ‘땅굴’이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까지 뚫려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를 증명하고자 2001년 민간인들이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남굴사)’이라는 모임도 결성했다. 일부는 수도권뿐 아니라 화성, 대구, 포항, 부산까지 남침용 땅굴이 뚫려 있다고 주장한다.


                   1978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발견된 제3땅굴. 지하수가 바닥에 차 있는 모습이 보인다.


2014년에는 공군 출신으로 합동참모본부(합참)에서 북한 군사 정보를 담당했던 예비역 소장 한 모씨가 “청와대 주변에 최소 84개의 땅굴망이 존재한다. 삼청동 총리공관에는 최소 6개가 나 있으며 경복궁 지하에는 5개 이상의 북한 기지가 건설돼 있다”며 “북한이 땅굴을 파기 위해 대형자동굴착기계(TBM· Tunnel Boring Machine) 300여 대를 도입했다”고 했다.

한씨는 책을 내고 ‘국방부가 땅굴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방부가 한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자 한씨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씨는 미국에서도 단체를 만들어 땅굴의 존재를 주장하며 한인 동포를 상대로 안보 강연을 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당시 하마스는 행글라이더 등을 활용해 이스라엘에 기습 침투했다. 곧이어 이스라엘군(IDF)이 반격에 나서 하마스를 격퇴해나갔다. 팔레스타인 정착촌 가자 지구를 장악한 IDF는 하마스가 파놓은 지하 터널(땅굴)도 공개했다. 행글라이더 전술에 이어 지하 땅굴까지 발견되자 일부에서는 ‘북한군의 전술과 일치한다’ ‘북한이 하마스에 땅굴 기술을 전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언론에 ‘하마스 땅굴’이 등장하자 우리 사회에서 ‘남침 땅굴’의 존재를 주장해온 소수(少數)도 ‘땅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수’가 말하는 땅굴은 ‘휴전선 일대에서 이미 발견됐거나, 발견하진 못했으나 존재하리라 의심할 만한 땅굴’이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땅굴은 휴전선 일대에서 남방(南方) 20km 이상 굴착돼 수도권~부산까지 뻗어 있는 ‘수십 개의 장거리 땅굴’을 말한다.

우리 군에서는 공병(工兵) 병과가 땅굴 탐지를 맡고 있다. 이들은 공학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을 중시한다. 공병 출신 예비역 장교를 비롯해 침투 대응 업무를 맡았던 이들에게 ‘일부 사람들이 북한이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까지 땅굴을 뚫어놓았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말도 안 된다”였다.


장거리 땅굴이 불가능한 3가지 이유

합동참모본부에서 근무한 J씨는 “3가지 이유로 장거리 땅굴은 불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굴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버력(refuse)을 한미의 ‘감시망’을 피해 배출하는 게 불가능하다. 지하수 처리도 쉽지 않다. 환기 또한 되지 않는다.”

버력은 무가치한 암석 덩어리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버력은 기존 고형물 대비 부피가 3배가량 늘어난다. 직경 2m인 터널을 20km 파낼 경우 버력 12만5600t이 발생한다. 5t 트럭으로 2만4000번 이상 실어 날라야 한다. 임진강 일대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부산역까지 직선거리는 약 360km. 지하 터널을 뚫는다면 5t 트럭 분량으로 432만 번을 옮겨야 한다.

미국은 인공위성을 통해 핵실험 징후를 포착한다. 북한이 풍계리에 핵실험 갱도(길이 2km)를 굴착할 때 배출하는 버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지하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굴착 시작점이 종료점보다 높으면 지하수가 출구 쪽으로 흘러 들어가 침수된다. 이 때문에 남쪽으로 갈수록 갱도 위치는 지면과 가까워져야 한다.

 장거리 땅굴일수록 굴착 시작점이 깊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수평으로 터널을 공사할 경우 300m 간격으로 양수 시설을 설치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한 땅굴은 150~200m에서 굴설됐는데 이때 발생하는 지하수는 하루 약 7만 톤이다. 일산 호수 담수량의 7분의 1이다.

환기도 문제다. 한국 지형 특성상 화강암 지대가 많아 굴착을 위해선 발파(發破)를 해야 한다. 발파를 하면 탄산가스가 발생하고 산소가 부족해진다. 작업자들이 질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로 지상의 공기를 불어넣고 지하의 공기를 뽑아내는 장치가 필요하다. 땅굴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이 환기 시설(3km 간격)은 더 많이 설치해야 한다. 감시망을 피해 이 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까지 땅굴 나 있다”



         남굴사 회장을 지낸 김철희씨가 주장하는 장거리 땅굴. 김씨는 다우징을 통해 검은색으로 표시한 곳에 땅굴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말 김철희씨가 땅굴에 대해 제보할 게 있다며 본지를 찾아왔다. 1920년대생인 그는 미국에 거주 중인데 땅굴 문제가 심각해 이를 알리고자 잠시 귀국했다고 했다. 김씨는 “땅굴이 남한 전역에 있다. 서울에는 35개, 부산에는 20~30개가 뚫려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예비역 중령으로 중앙정보부에서 북한과장을 지냈다. 2000년대 초에는 5년 동안 남굴사 회장을 맡았다. 땅굴을 찾기 위해 사재를 털어서 모임을 이끌었다. 기자에게는 땅굴의 증거라며 각종 자료를 보내줬다. 남굴사 명의의 통장 거래내역서부터 자신이 정부 기관에 보낸 탄원서와 민원, 미국 국방성에 쓴 편지도 있었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했는지 판독도 쉽지 않은 문서가 많았다. 땅굴이 걱정돼 쓴 175페이지 분량의 저서도 읽어보라며 건넸다. A3용지 크기의 남한 지도를 꺼내놓고는 “다우징 기술로 파악한 남침 땅굴의 경로”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남굴사 회장이었던 2003년 경기 화성 일대에 남침 땅굴이 있다고 판단해 절개 작업을 벌였다. 당시 김씨는 시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1년 봄 화성시 서쪽 끝부분 서해안에 있는 지화리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당시 한 업자가 우물 파는 작업을 하다가 지하 30m 지점에서 굴착 장비가 뚝 떨어지고 에어(공기)를 넣는데 무한정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소식을 몇 달 후 전해 듣고 그곳에서 구멍 네 개를 시추해 녹음을 하니까 한 구멍에서 소리가 감지됐다. 3, 4분 정도 짧은 것인데 (북한이) 역(逆)대책 작업하는 소리로 추정되는 기계음과 사람 목소리가 잡혔다. 우리는 화성 일대를 집중적으로 탐사하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이곳까지 땅굴이 와 있음을 확신하고 작업을 계속하게 됐다.”

남굴사가 시추한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는 김포 반도에서 직선거리로 약 65km, 군사분계선에서 63km 떨어진 곳이다. 제부도에서는 1시 방향으로 약 7km에 있다. 남굴사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이 서해와 한강을 관통해 굴착했거나 육지로 우회해 화성까지 뚫고 내려왔다는 말이다. 우회할 경우 85km였다. 군사적으로 화성 일대에는 중요한 군사 시설이 없다.


20년 지났지만 땅굴 소식 없어



        2014년 12월 육군 시추부대가 경기 남양주 지금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땅굴 탐지 장비로 남침 땅굴 탐사 작업을 하고 있다. 탐사 결과 땅굴은 없었다.


당시 화성 현장에서 김씨는 끊어진 와이어를 보여주며 “(북한의) 역대책 증거”라고 말했다. 그 후로 20년이 흘렀지만 화성에서 남침용 땅굴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없었다. 지화리 시추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 목소리’는 “대감께서 총리 되십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추후 국방부가 이 녹음을 표준과학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지상에서 조작된 소리로 판명됐다.

김씨는 굴착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버력을 남한 지역에 있는 빈 탄광에 버리거나 갱차(坑車)를 이용해 북한으로 옮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 금강산댐 부근에 버력을 한데 모아놓는 곳이 있다고 했다. 이어 유사시에는 땅굴을 통해 북한 특수부대 병력 20만 명이 2주 안에 동시 침투해 남한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땅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대통령실에 땅굴 문제를 꼭 전달하고 싶다. 땅굴 문제는 대통령만 해결할 수 있다”며 “대통령실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라디오 안테나처럼 생긴 엘로드. 수맥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두 막대기가 X자로 모인다.


기자는 김씨의 주장 중 상식에 어긋나거나 과학적 근거가 분명치 않은 내용에 대해 반문했다. 그럴 때면 김씨는 땅굴이 부산까지 뚫렸다는 것을 공리(公理)로 삼아 설명하려 했다. 또 “땅굴은 다우징 기술로만 탐지해낼 수 있다”고 했다.

다우징 기술이란, L자형 쇠막대기(엘로드)를 양손에 들고 수맥을 찾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두고 민간 땅굴 탐사자들은 “땅굴 탐지의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과학을 전공한 이들은 “비과학, 미신 그 자체”라고 말한다. 엘로드를 든 이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기를 통해 땅굴을 탐지한다”고 주장한다.

김철희 예비역은 땅굴에 대한 탈북자의 제보를 신뢰하고 있었지만 제보한 탈북자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장거리 땅굴’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탈북자의 땅굴 관련 증언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들이 탈북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갖는 이유는 제1땅굴이 탈북자의 증언 덕분에 발견됐기 때문이다.


탈북자 제보로 발견된 땅굴

북한에서 땅굴 측량사로 일하던 김부성씨는 1974년 9월 탈북했다. 당시 김부성씨의 제보를 바탕으로 제1땅굴을 발견했다. 제3땅굴을 발견하는 데도 김씨가 기여했다. 문제는 김부성씨 이후로 탈북자 중 땅굴과 관련해 유의미한 제보를 한 이는 없다는 점이다.

1980년대 땅굴 수색 작전에 투입됐던 D씨는 민간인들의 땅굴 신고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D씨는 “민간인이 직접 시추 작업을 하면 비용이 많이 든다. 온천이 있을 법한 곳에 땅굴이 있다고 허위 신고를 해 온천이 있는지를 알아낸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는 땅굴 발견 보상금(1억원)을 노리고 주변 사람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남침 땅굴의 존재를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 군의 땅굴 탐지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군 당국은 한국군은 땅굴 탐지 능력이 뒤처지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제1~3땅굴은 시추기로 북한이 파놓은 굴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발견했다면, 제4땅굴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확인했다. 과학기술원(KIST)에서 개발한 탐사 장비 ‘지오비스’로 지하 145m 지점에서 남북으로 연장된 굴을 파악해냈다.

땅굴 탐지 장비를 두고 인체를 검사하는 의료 장비와 비교하기도 한다. 땅굴 탐지에도 사람의 청진기에 해당하는 ‘청음 장비’, 초음파 검사기와 같은 ‘탄성파 탐사기’, X-ray·CT촬영·MRI에 해당하는 중력탐사·자력탐사·전기탐사·전자파탐사 장비 등이 있다.

육군본부에서 탐지처장을 지낸 예비역 대령 Y씨에 따르면, 땅굴 탐지 방식은 시추공을 20m 간격(중요한 곳은 5~10m)으로, 깊이 150~500m를 굴토한 후 한 개의 시추공에 발신기를, 다른 한 개에는 수신기를 넣어 송수신기를 5cm씩 올리면서 촬영한다.


“다우징은 땅굴 선동의 길라잡이”

Y씨는 “지하철 소리를 두고 ‘(북한이) 땅굴 파는 소리’라고 주장하는 민간인 탐사자들이 있었다. 10만 배로 확대해 분석한 결과 안내방송, 사람 목소리, 웃음소리까지 녹음돼 있었다”며 “실제 북한이 사용하는 버력 처리 갱차의 길이는 2m에 불과함에도 이들이 주장대로라면 갱차의 길이가 무려 500m를 넘겼다. 국방부의 청음 장비는 소리 나는 곳의 방향까지 잡아내는 최첨단 장비”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에서는 다우징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시험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우징은 ‘땅굴 선동의 길라잡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 군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에 땅굴 탐지 전담 공병단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이 땅굴을 파냈거나 파낼 수 있는 곳에는 청음 센서를 설치해 항시 감시한다. 여기에 주기별로 휴전선 일대에서 탐지 작전을 펴고 있다.

장거리 땅굴을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이 해외에서 TBM 300대를 도입해 최고 수준의 굴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얼마를 지불해 도입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앞서 발견된 제1~4땅굴은 기계가 아닌 정과 망치를 이용하거나 화약 발파를 통한 수작업으로 굴착됐다. 직경도 2m 수준에 불과해 TBM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이 TBM을 도입했는지 또한 확인되지 않는다. 국방부는 “북한이 1980년대 도입한 광산굴착장비를 TBM으로 오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TBM은 지하철 공사와 같이 주로 직경이 큰 곳을 굴착할 때 사용한다. 직경[소형 4~7m, 대형 10m 이상]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통상 직경(1m당 100만 달러)에 비례한다. 직경 5m를 파내는 TBM은 500만 달러(한화 약 70억~80억원) 선이라고 한다. 직경 5m인 TBM 본체는 후속 장비만 120m가 넘기에 인공위성과 같은 감시 장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남침 땅굴, 대부분 1971~75년 굴착

일부는 ‘핵폭탄보다 남침 땅굴이 더 무섭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땅굴의 효과는 베트남전까지만 유효했다”고 말한다. 벙커버스터와 같은 스마트 폭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땅굴에 폭탄이 떨어지면 매몰과 함께 진공(眞空) 효과가 발생한다. 지하 공기가 급격히 팽창·수축한다. 땅굴 내부에 있는 병력은 질식사한다.

하마스의 땅굴과 북한의 남침 땅굴을 연관 짓는 설명도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도시 민간 거주 지역에 만든 하마스 땅굴과 북한이 판 땅굴은 전혀 다른 조건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하마스에 땅굴 기술을 전수했다는 주장도 추상적이라고 지적한다. 땅굴을 만드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군 전술을 연구해온 이들은 남침용 땅굴 대부분이 1971~75년에 굴착된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미국에서 일자 김일성이 기습 남침을 위해 땅굴을 팠다는 분석이다. 1971년 9월 김일성은 이른바 ‘9·25 전투명령’이라는 교시를 내렸고 이후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1990년 발견한 제4땅굴도 1972년 굴착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결 연도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장거리 땅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는 이들도 “제5땅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2014년 10월 국방부는 “장거리 남침 땅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 남침 땅굴 존재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며 “DMZ 일대에 추가 땅굴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축선 27개소를 선정해 탐지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장거리 땅굴을 주장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8건 모두 승소했다.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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