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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20년 후면 미주한인사회는 100% 좌경화 된다"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 등록 2024-06-03 10:29:14
  • 수정 2024-06-03 10: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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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립10주년 맞은 자유민주연구원 유동열 원장

“한국 안보경찰, 팀장급 이상의 80%가 한 번도 간첩 수사 안 해본 사람들”






“대공수사력 총량 유지 안 돼”

전투는 군인만 하는 게 아니다. 안보 전선(前線)에 뛰어든 민간인도 많다. 삶이 팍팍할지라도, 체제 불안 없이 사는 건 이들의 노고(勞苦) 덕이기도 하다. 유동열(柳東烈) 자유민주연구원장도 그중 하나다. ‘국가정체성 수호와 헌법 체제의 발전’이라는 연구원의 존재 목적 아래 각종 연구와 전파를 통해 대한민국 체제 유지에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당장 인터넷에 이름 석 자를 쳐보면 안다. 크고 작은 안보 사건에는 늘 그가 언급된다. 이렇게 사상전(思想戰)을 벌인 지 벌써 10년이 됐다. 올해 역시 전장(戰場)은 치열해 보인다.

― 요즘 연구원에서 가장 중대하게 보는 사안이 뭡니까.

“국가보안법 수호와 국정원 대공(對共)수사권이죠. 2020년 좌파들이 국보법폐지국민연대를 만들었어요. 103개 단체가 연합했죠. 국보법을 없애면 대한민국은 난리 납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연구원에서는 지난 3년간 108개 단체를 연합해 국보법수호자유연대를 결성했습니다. 국보법이 헌법재판소 위헌 소송에 걸렸을 때 민변 측에서는 폐지 정당성 의견서를 냈고, 우리는 합헌 의견서로 이를 방어했습니다. 세미나도 수차례 열었고요. 매일 아침 헌재 앞에서 릴레이 시위도 했죠. 지난해 국보법 합헌 판결에 우리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자평합니다.”


                   지난 2021년 11월 22일 헌법재판소 앞 국가보안법 수호 1인 릴레이 시위 현장에서 유동열 원장.


―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죠.

원래 국정원이 잡던 간첩을 올해 1월 1일부터 경찰이 전담 수사하게 됐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됐다면 원복(原復) 가능성이 있었지만, 어렵게 됐다.

“2017년부터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반대 세미나를 열었고, 시위도 해봤지만 결국 폐지됐어요. 총선 참패로 복원도 힘들게 됐고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돼요. 지속적으로 부활을 외쳐야죠. 국보법수호연대처럼 대공수사권을 지키기 위한 연구원 주관 비공식 모임이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원 전직들과 변호사 등 11명이 정기적으로 문제를 논의 중입니다.”

유동열 원장은 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정부가 구성한 합동점검팀에도 있었다. 국정원 인사 2명, 경찰 2명과 민간인 1명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유일한 민간인이 그였다.

―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한 지 5개월이 지났는데요, 당초 지적했던 우려사항이 현실화하고 있습니까.

“우선 국정원 수사권 폐지 이후 국가 대공수사력의 총량이 유지가 안 되고 있습니다. 대공수사권이 사라진 국정원 인력만큼 경찰에서 충원을 해야 하는데, 총량을 보면 축소된 상황이에요. 물론 더 뽑긴 했죠. 그런데 밑동 빼서 윗동 채운 격이에요. 6개 지역을 제외한 일선 안보과를 모두 폐지하고 안보수사국으로 배치한 거죠. 그러다 보니 최일선 안보, 소위 감시망이 사라졌어요. 파주, 문산 같은 접경지나 제주 해안가처럼 간첩 침투가 잦은 곳은 안보과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새로 뽑은 인력 또한 70%가 안보 수사 경험이 없는 인사입니다. 팀장급 이상은 80%가 한 번도 간첩 수사를 안 해본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간첩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겁니다. 예산과 장비도 총량 면에서 유지가 안 되고 있고요.

경찰 안보 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에요. 국내 안보사범에 대한 수사력은 상당히 뛰어나죠. 다만 북한과 연관된 간첩단 사건에는 약한 게 사실입니다.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도 경찰 대공수사 역량을 인정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명맥이 끊어졌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찰 대공수사력이 완전히 저하됐어요.”


“대통령 직속 안보수사청 만들어야”


― 이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뭡니까.

“국가수사본부 하부 조직인 안보수사국을 국가안보수사본부로 독립시켜 인력 보강을 제대로 한 뒤, 안보 수사만 전담토록 하거나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수사청을 만드는 겁니다. 안보수사청은 경찰, 국정원, 방첩사령부의 대공수사 인력을 배치해 간첩뿐만 아니라 산업스파이, 테러 수사도 함께 하는 미국의 FBI 형태의 조직입니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를 유지하면서, ‘공룡경찰’에 대한 우려 또한 불식시킬 수 있는 절충안이죠.”

― 국정원법 개정안의 취지가 국정원은 간첩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건데, 국정원 인사를 배치하는 안보수사청 설립이 가능하겠습니까.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상태로는 경찰이 해외망(網) 구축을 할 수가 없어요. 다 떠나서 당장 법적으로 불가합니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집 활동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지만, 경찰은 행정기관이죠. 물론 특례 조항을 둘 수는 있겠지만, 구축한다고 해도 십수 년이 걸릴 일이에요. 경찰은 지금 국정원이 하던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 중인데, 올 연말까지 자체 실적은 없을 겁니다. 해외망도 없고, 수사하려면 영장을 쳐야 하는데 그럴 구조가 안 돼요.”

― 간첩들은 좋겠네요.

“북한 김정은에게 좋은 일이죠.”


“간첩 활동 더 강화될 것”


― 김정은은 올 초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등 대남(對南) 선전·선동 기구를 모두 폐지하면서 한국과의 단절을 선언했죠. 이 때문에 간첩이 축소될 거라는 시각도 있더군요.

“완전히 잘못된 시각입니다. 김정은의 대남전략을 ‘폐기’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전면 수정’인 거예요. 북한의 전(全) 조선혁명 수행 과정을 보면, 결국 남북합작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게 목적입니다.

합작하겠다는 남(南)은 현 정권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미국을 축출하고, 정권 타도를 한 뒤, 인민 정권을 수립한 뒤 합작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합작 방법은 두 가지예요. 평화적 방도(연방제 통일)와 비평화적 방도(전쟁 통일)죠. 지금 김정은은 오직 비평화적 방도로만 가자고 선언한 겁니다. 김일성 구도의 평화적 방도, 그러니까 위장 평화죠.

이를테면 남북 대화, 회담은 이제 소용없다는 거예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만나봤자 소용없으니, 위장 평화 통일 방안은 이제 버리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 범민련이 해체하자, 지령을 받고 남측 본부도 즉각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들도 대화가 아닌 무력 대응 체제로의 전환에 들어간 거예요.”

― 김정은이 김일성의 평화 노선을 버린 걸 선대(先代) 유훈을 무시한 처사로 보기도 하던데요, 대남 공작 양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유훈을 거역하는 게 아닙니다. 핵 무력에 기반한 대사변을 통해 선대 수령 유훈인 적화 통일을 조기 달성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통일’이라는 단어도 안 쓰죠. ‘혁명’인 거예요. 북한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조선’을 외쳐왔는데, 재작년부터 한국을 대한민국이라 칭하며, 한반도를 ‘두 개의 조선’으로 분리했죠. 남한을 적화 통일, 그러니까 전 조선혁명 해야 한다는 명분이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조선’으로 가기 위한 것으로, 이 노선의 포기가 아닌 거죠. 선대 수령의 조국 통일 유훈(적화 통일)을 폐기하는 것도 아니고요.”

― 무력 적화 통일의 목적 아래 간첩 활동은 더 과격해지겠군요.

“더 강화될 겁니다. 대남대화부서인 통일전선부를 정리하고, 조평통 등 기구 해체 후 대남 공작부서인 정찰총국과 문화교류국으로 조직을 간소화하겠다는 거니까요. 최근 적발된 간첩단들이 모두 문화교류국 연계잖아요.”


“안보재판부 별도로 둬야”


                   지난 2017년 10월 27일 LA에서 열린 한미동맹협의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유동열 원장. 



어느 때보다도 간첩 공작을 막아야 할 시점에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셈이다. 잡기 어려워졌고, 잡더라도 처벌이 쉽지도 않다. 극심한 사법투쟁 때문이다. 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적발된 민노총, 창원, 제주, 청주간첩단은 재판관 기피 신청, 국민참여재판 신청 등을 통해 재판을 최대한 지연했다. 유 원장은 “사법시스템을 무력화(無力化)하려는 간첩들의 투쟁에 사법부가 무방비로 끌려다니고 있다”면서 “민사부, 형사재판부처럼 안보재판부를 별도로 둬 간첩 전담 판사가 재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다섯 차례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2년 4개월 만에 1심 재판을 받은 청주간첩단(자주통일충북동지회) 같은 경우 선고 이틀 전 유엔에 망명 신청을 하기도 했죠. 다행히 청주지법에서는 이들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법정 구속시켰어요. 정말 잘한 일입니다. 다만 이들에게 간첩죄 적용은 안 됐어요. 금품수수와 회합·통신·범죄단체조직죄만 인정됐죠.”

― 연구원에서는 간첩죄 개정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했죠,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현행법상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죄 등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간첩죄 적용은 어렵다. 형법 제98조(간첩)상 명시된 ‘적국(敵國)’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 단체다.

“적국뿐만 아니라 외국(우방국 포함)과 외국인 단체 및 비국가 행위자들의 간첩 활동도 처벌할 수 있도록 ‘적국’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와 반국가 단체’로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국가보안법 제4조 1항 2호에 현행 ‘국가 기밀’뿐만 아니라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각종 정보’를 탐지, 수집, 전달, 중계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신설해야 합니다.

또한 사이버 간첩 활동과 산업스파이 활동을 규제하는 법제 구축도 시급합니다. 현행 간첩죄 관련 조항은 최대 70년 최소 32년이 경과했습니다. 군 형법 제13조 간첩 조항은 61년,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는 32년이나 됐어요. 이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22대 국회 때 발의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 통과가 안 될 텐데요.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하면 안 되죠. 국회 표결에서 깨지더라도 이런 법이 꼭 필요하다는 걸 국민에게 알리고, 발의를 해서 기록에 남겨야 합니다. 법안이 폐기될 때까지 또는 자동으로 상정이 기각될 때까지 시도는 계속할 겁니다.”


“집토끼가 집을 나간 것”


― 4·10 총선 결과가 향후 안보 상황에 미칠 영향은 뭘까요.

“이번 총선을 보며 국민들의 이념적 지향이 완전히 좌경화(左傾化)됐다고 느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집토끼가 집을 나간 거죠. 집권여당이 누누이 말한 ‘국민의 눈높이’가 사실은 종북(從北) 좌파의 눈높이에 맞춘 거였죠. 예컨대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는 발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 겁니다. 공천은 또 어땠습니까. 대한민국을 배반하고 북한에 붙었다가, 다시 북한에 등 돌리고 온 주사파 전향자에겐 공천을 주고, 한눈팔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해온 선명 우파는 배척했어요.

혁신은 왼쪽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힘은 아무리 광주에 가도 표를 못 받아요. 설령 거기서 주한미군 철수시키고, 국보법 철폐하겠다고 해도요. 보수는 오른쪽을 지향해야죠. 여기서 오른쪽은 헌법적 가치를 말합니다. 우파가 이렇게 분열돼버렸으니, 앞으로도 상황은 똑같을 겁니다.”

유 원장은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할 정부라면 북한의 대남전략에 대응할 올바른 대북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큰 위기는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입니다. 신대남전략에 따라 예상되는 도발 유형은 총 4단계로 나눠볼 수 있어요. 1단계가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해상 도발 같은 겁니다. 지금은 2단계예요. 장거리 미사일 실험, 대남침투 및 간첩 활동 강화, 국가기관망 등 대대적 사이버 테러 등이 여기 속합니다. 김정은은 지금 심기가 거슬릴 거예요. 위협해도 무사태평(無事太平)이거든요.

좋게 말하면 국민들이 성숙한 건데, 나쁘게 말하면 안보불감증이죠. 말로만 해선 안 되겠네, 했다가는 바로 3단계로 가는 겁니다. 연평도 포격 같은 육·해상, 해저 기습 공격이죠. 마지막 4단계는 전면전(全面戰)이고요. 우리는 국가안보시스템에 대한 전면 점검과 정상화를 통해 고강도 압박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비대칭(非對稱)전략을 써야 할 때입니다.”


“모범생들이 운동권이 되는 이유”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자유민주연구원 유동열 원장은 “보수·안보 세력 재건(再建)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 대중은 이런 위기감이 없죠. 보수·안보 세력 재건(再建)을 위해서는 어떡해야 합니까.

“단기적으로 되면 좋겠지만, 장기적인 노력이 있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게 교육입니다. 교육이라면 학교만 생각하는데, 가정교육도 매우 중요해요.

제 딸이 중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밥 먹다가 그러더군요. 미국 사람은 나쁘대요. 학교 선생님이 그랬답니다. 명색이 이념 전문가의 딸이 이런 말을 한 거죠. 오늘은 학원 가지 말고 아빠랑 얘기 좀 하자 해서, 1시간20분간 설명했어요. 듣더니 아빠 말이 맞대요. 전교조 교사가 미국이 나쁘다는 걸 가르치는 데는 5분이 채 안 걸리지만, 이를 바로잡는 데는 1시간이 넘게 걸린 거예요. 선생님 눈만 쳐다보는 모범생들이 나중에 운동권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정희가 대표적이죠. 가정에서부터 좌경화된 판을 바꾸려는 노력을 안 하면, 30년 후에는 20대부터 80대까지 다 왼쪽이 돼 있을 겁니다.”

그동안 약 200회의 내·외부 세미나, 정책토론회, 간담회를 통해 자유민주 사상전을 벌인 것도 ‘교육’의 중요성을 알아서다. 유동열 원장은 이밖에도 200차례 이상의 방송 출연과 1500개 내·외신 언론 보도로 ‘올바른 국가관’을 알려왔다. 그는 내내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러한 활동은 보수·우파적 가치 기준이 아닌,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이뤄진다”고 했다.

자유민주연구원은 ‘작지만 강한 연구원’을 표방한다. 상근 인원은 세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네트워크 인원은 100명이 넘는다. 장관 출신부터 각 정보기관 고위급 전직들과 탈북민, 저명 교수와 법조인, 군사전문가 등이 끈끈하게 소통한다. 미국 한미연구소 소속 연구원인 ‘38노스(North)’와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도 상근 인력을 2~3명만 두고 네트워크 체제로 운영한다. 지난해 2월에는 공권력 감시센터도 설립했다. 현재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 5건, 이재명, 조희연, 전현희 등에 대해 22건을 고발했다.


“손 놓고 있으면 20년 후 미주한인사회는 100% 왼쪽 된다”


                   지난 2015년 10월 18일 UC버클리대학 한인 학생들과의 좌담회 모습.

 
― 연구원 주요 수입원은 뭡니까.

“정부용역 예산입니다. 때문에 좌파 정권 때는 활동에 제약이 있어요. 아무리 신청을 해도 안 되니까요. 실제로 문재인 정부 5년간은 한 건도 못 했어요.”

― 보통은 5년에 몇 건을 수행합니까.


“평균 6~7건은 됩니다. 건당 용역비는 많게는 3800만원 정도 되고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오고도 한동안 달라진 게 없었어요. 문재인 정권 말기 정부기관들이 향후 1년 치 발주를 좌파 단체에 줘버렸거든요. 그렇게 2023년은 흘러갔고, 올해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아요. 대통령만 바뀌었지, 나머지는 그대로니까요.”

― 그러면 연구원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동안 퇴직연금 모아둔 걸 썼고, 중견기업인을 비롯한 뜻있는 분들의 후원을 받아 유지하고 있어요. 고마운 일입니다.”

척박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외 지부까지 일궜다. LA, 시카고, 워싱턴DC, 뉴욕, 토론토, 유럽까지 6곳이다. 해외 지부는 독립 운영 방식이다. 지부마다 네트워크도 따로 구축돼 있다. 이를 통해 10차례 이상 해외 동포 대상 안보 강연도 개최했다. 지난 2015년 10월에는 미국 서부 명문대학을 돌며 한인 학생 대상 좌담회도 열었다.

UC버클리대, 샌디에이고대, 오렌지카운티대, UCLA대 등 5개 대학에서다. 해외 명문대 한인 학생은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주역이자, 북한의 주요 포섭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북한은 이미 약 40년 전부터 교민 2세대를 대상으로 포섭전략 중 하나인 방북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면서 “국내보다 중요한 게 해외 교민 교육”이라고 했다.

― 미국 내 한인의 70~80%가 좌파라고 들었습니다.


“UCLA 한국학 도서관에 갔더니 서적의 약 80%가 북한 찬양 서적이더군요. 도서관 관계자에게 왜 이렇게 북한 책이 많냐고 했더니 대부분 기증받은 거랍니다. 나머지 20% 한국 서적의 70%는 좌파 서적이었어요.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모두 전교조 같은 데서 기증한 것들이죠. UCLA에서 한국학 공부를 하면 출발점이 왼쪽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방문 후 이 사실을 보고서로 써 청와대, 국정원, 외교부에 배포했어요. 책 보내기 운동을 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요. 추진을 안 하더라고요. 우리가 손 놓고 있다가는 20년 후 미주한인사회는 100% 왼쪽이 될 겁니다.”

― 한인 대학생의 국가관은 어땠습니까.


“‘해방 이후 한국이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놓고 토론을 벌였어요. 학생들은 높은 교육열, 국민의 노력 등을 꼽았습니다. 다 맞는 얘기예요. 거기다 첨언했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가체제’라고요. 남과 북을 보면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국가체제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고요. 강연 후 한 학생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중학교 때 미국 와서 공부밖에 몰랐는데, 선조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일궜는지 알게 됐고, 향후 대한민국 국민으로 뭘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학생 대상 강연이 활성화돼야 할 텐데, 막상 안보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은 많이 없죠.

“세미나에 오는 분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인데, 이분들은 이미 국가관이 투철합니다. 젊은 세대의 사고를 바로잡아주는 게 중요하죠. 긴 글을 안 보는 요즘 세대를 위해 ‘국보법 바로 알기’ 카드뉴스를 배포하기도 하고, 소셜미디어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어요.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힘닿는 데까지 계속하려고 합니다.”


아버지도 대공 분야 활동

유동열 원장은 경찰청 출신이다. 1989년 1월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신설 당시 연구원으로 들어가 25년을 근무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분야에 발을 디딘 건 부친(父親)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유장환 전(前) 경정이다. 경찰 대공 분야 두 산맥 중 한 맥을 쥐었던 인물이다. 초반엔 ‘아버지 백으로 들어왔다’는 말도 들었다. 소문은 3개월 만에 사그라졌다. 그해 3월 문익환 방북(訪北) 사건이 터지면서다.

“안기부에서 문익환 목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 후 우리 연구소에다 감정 분석을 의뢰했어요. 서류 박스 20개를 연구원 11명에게 배분했습니다. 분석 결과를 안기부에 보냈는데, 수사단장이 ‘유동열 연구원 분석이 가장 잘돼 있다’고 했다더군요.”

이후부터 안기부에서는 간첩 사건이 터지면 유동열 연구원부터 찾았다고 한다. 이 덕에 안기부 자문위원을 맡았고, 대검찰청 민주이념연구소 자문위원도 지냈다. 그렇게 차츰 이름을 알렸다.


“저야 이름 한 줄이라도 나오는데…”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안보대책실 선임연구관을 끝으로 2014년 2월 명예 퇴직했다. 2013년 8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박영선) 참고인 출석이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북한이 허위 사실,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데 당연히 대항 심리전(心理戰)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 무렵 종편 출연을 했던 그에게 정치권에서는 집중공세를 펼쳤다. “경찰청 공무원이 정치 활동을 한다”면서다. 결국 감찰까지 따라붙었지만, 정당한 절차를 밟은 출연임이 밝혀졌다. 유 원장은 “경찰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2014년 3월 3일 자유민주연구원을 설립했다.

연구원을 설립하던 달, 통진당 위헌심판 정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건 손꼽히는 이력 중 하나다. 그때 그는 76페이지에 달하는 위헌성 분석을 제출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조선노동당 노선과 통진당 노선이 어떻게 비교되는지를 규명했다. 통진당 해산 후 법무부에서는 백서(白書)를 만들었다. 상·하권으로, 각각 두께가 얼추 20cm에 달한다. 과장 보태 페이지마다 참고인 유동열의 진술이 언급된다. 해산 결정에 유 원장의 논리가 상당히 쓰인 셈이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 추구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위기 속에서도 이러한 활동이 곧 국가 저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강연장에 가면 늘 서두에 이런 말을 합니다. 국정원과 방첩사의 대공 요원들과 안보 경찰들의 노고에 경의(敬意)를 표한다고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각 분야에서 신념을 갖고 일한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간첩들이 70년간 대한민국을 전복(顚覆)시키지 못한 이유도 이런 저력이 쌓여서죠. 음지(陰地)에서 일하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야 언론에 이름 한 줄이라도 나오는데, 그분들은 이런 것도 없어요.”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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