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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칼럼] '맥도날드' 그 합리성 속의 불합리성을 말하다
  •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부산 환경교육센터 이사
  • 등록 2024-05-12 14:18:55
  • 수정 2024-05-12 14: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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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가 맥도날드 아닐까. 맥도날드 하면 햄버거요 햄버거 하면 맥도날드가 연상되듯이 이 둘은 이미 하나가 된 지 오래다. 실로 지구촌 문명국 사람 중에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몇이나 될까?

아니 한국 사람들만 국한해서도 맥도날드의 매장이나 적어도 맥 드라이브를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꼭 맥도날드가 아니어도 브랜드는 상관없다. 버거킹이든 롯데리아든 맥도날드 햄버거와 그 매장,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 구성된 패스트푸드 음식점 모두는 '맥도날드'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이런 ‘맥도날드’들을 먹고 마시며 생활하고 있다.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미국의 조그만 햄버거 가게가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어떻게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그 이유를 그의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를 통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맥도날드의 성공과 세계화를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여기서 맥도날드화란 맥도날드로 대표되고 상징되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와 시스템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획일화된 미국식 생활양식의 상징인 맥도널드의 패스트푸드 시스템에 적용되는 효율성,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 통제가능성이라는 4가지의 합리성 원칙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현대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리처는 2000년대 중반 기준 전세계 1백20여 개국에 3만여 개의 매장을 가진 미국의 대표적 패스트푸드 회사인 맥도널드(이하 맥)를 모델로 현대사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물론이고 의식주, 문화, 교육, 의료, 쇼핑, 여행, 결혼, 죽음, 출생, 오락 등등 사회 전 분야에서 맥도날드화를 관찰할 수 있다며, 합리화의 끊임없는 지배에 놓인 우리의 삶과 그 비인간성을 지적하고 합리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리처가 말하는 맥도날드화의 핵심 요인은 네 가지다. 효율성(Efficiency)과 계산가능성(Calculability) 그리고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과 통제가능성(Control)이다. 맥도날드화는 효율적이다. 목적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추구한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두 정해진 규칙을 따라 움직인다.

점원과 대화하거나, 차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비효율적인 과정은 최대한 생략된다. 또한 맥도날드화된 상품은 계산 가능하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싸게 섭취했느냐만이 결과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된다. 오로지 강조되는 것은 많이, 빨리, 싸게다. 맥도날드화된 상품은 예측 가능하다. 

맛은 예측 가능하게 일정 수준으로 통제되며, 지구 반대편으로 가더라도, 황금 아치 아래에서는 대략 같은 맛을 제공할 빅맥을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는 점원이 기계처럼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길 기대하고, 점원 또한 소비자가 기계처럼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길 기대한다. 맥도날드화된 체계가 위의 원칙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매뉴얼에 의한 통제 덕분이다. 소비자와 점원 양측이 경영진이 만든 규칙에 따라 움직이게 돼 있다.




맥도날드(이하 맥)의 햄버거가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규격화된 햄버거 제품의 특성에서 잘 드러난다. 맥의 햄버거는 우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지, 심지어는 이동하면서도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빅맥은 부피가 크다. 싼값에 큰 것을 얻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맥의 햄버거는 예측 가능하다. 

언제 어디든 지구 반대편에서도 규격화된 똑같은 것이 나온다. 또한 계산 가능하다. 맥의 햄버거는 물가 변동에 비해 가격 변동 폭이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의 햄버거는 통제 가능하다. 제조과정이 기계적일 뿐만 아니라 판매과정 및 소비과정 또한 무언의 규칙에 충실하며 소비자는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야 한다.

맥도날드의 매장은 또 어떠한가. 맥의 의자는 딱딱한 플라스틱과 철로 이뤄진다. 이 의자는 모양으로만 보면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것 같지만, 실제로 앉으면 한 시간을 버티기 힘들다. 소비자들은 음식을 다 먹었으면 바로바로 그 자리를 비워줘서 다른 손님들이 그 자리를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매장의 분위기는 밝고 모던하다. 소비자를 위한 배려 차원이 아니라 아늑하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해서 소비자들이 오래 머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다. 맥도날드의 효율성이 극단적으로 실현된 예는 맥 드라이브의 완성이다. 맥도날드는 미국의 경우 최초의 운전자용 창구를 1975년에 설치했고, 4년 만에 전체 점포의 절반 정도에 설치했다. 

주차하고, 카운터까지 걸어가서 줄을 서고 주문하고 계산하고, 식탁으로 음식을 가져가서 식사하고, 또 식사 후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 귀찮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치는 대신 운전자용 창구에서는 고객이 창구에 차를 세우고 주문과 계산을 마친 후, 음식을 받는 대로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 된다. 그것으로 끝이다. 보다 효율적이기를 원한다면 운전하면서 먹으면 된다.

맥 드라이브는 패스트푸드점의 입장에서도 매우 효율적이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주차공간, 식탁, 종업원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객이 쓰레기를 가지고 떠나기 때문에 별도의 쓰레기통을 설치하거나 정기적으로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을 고용할 필요도 없다.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가?

그런데 이 효율성이 종업원의 편리와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맥의 고용된 점원들은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스에서 풍자한 나사 조이는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점원들은 효율성의 시스템 속에서 한갓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에서도 산업혁명시절 노동자의 해프닝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들은 거의 언제나 교체가 가능한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비정규직이다.

결국 맥도날드의 방식은 소비자에게도, 일하는 사람에게도 효율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효율적일까? 바로 경영자이다. 한마디로 맥도날드는 경영자의 이익에 충실한 구조로 돼 있다. 물론 바쁜 현대 소비자들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그로 생기는 가치를 훨씬 넘어버리는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경영자는 서비스와 인건비를 줄이고,  패스트푸드라는 이점을 이용해 싼‘듯’이 보이는 햄버거들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면서 소비자들에게는 싸고 편리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를 부려먹고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는 맥도날드의 부도덕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맥도날드화의 폐해에 비한다면 이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문제는 맥도날드화가 우리의 식생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간섭하고 조정한다는 점이다. 스포츠와 레저는 물론이요 언론과 교육, 심지어는 종교와 성 같은 내밀한 영역에도 맥도날드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로 집약되는 시스템과 경영방식이 현대사회의 전 분야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바로 계몽과 과학, 즉 합리성과 효율성이란 미명 하에 인간이 자연과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방식 아니던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일찍이 합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지나친 합리적 제도가 빈틈없는 그물망이 돼 결국 인간들은 합리성의 쇠 감옥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일찌기 경고했다. 관료제화의 폐해이다.

리처는 맥도날드화의 폐해를 관료제의 폐해에 견줘 설명한다. 관료제는 규정에 따라 예측가능하게 움직이며 결국 인간을 통제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지나치게 수량화를 강조하다 막바지에는 인간성을 부정하게 되는 점에서 맥도날드화와 비슷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인간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이고 계측 가능한 어떤 규칙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개인의 창의성이 무시되고 그 합리성의 체계 안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는 “쇠 감옥”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우울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점이 바로 이 “맥도날드화”의 불합리성과 비인간성이다.

현대인들은 대형병원에서의 출산부터 기업화된 장례회사의 장례까지 '맥도날드형 합리성'에서 어떠한 시도도 자유로울 수 없다. 베버가 말한 '쇠 감옥'에서 리처가 말한 '벨벳감옥'으로 조금 더 편리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점에 있어서 본질은 동일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쩔쩔매던 모던 타임즈의 노동자는 이제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앞에서 혹은 드라이브인스루에서 대기표를 뽑고 차례로 순서를 기다리는 소비자로 모습이 바뀌었을 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공장의 생산라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패스트푸드점에까지 그 원리가 확산됐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후기산업사회인 오늘날을 사는 부인할 수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글쓴이: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부산 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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