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법률비용만 1천만 달러 이상 미국에 쏟아 부어 ••• 연방 법무부, 반대 입장 고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미국 정부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연방 법무부로 인해 제동이 걸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이 다음달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발표를 시작으로 조만간 마무리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남은 상황에서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합병은 무산된다. 미국의 입장이 워낙 완강한 것으로 알려져 합병이 점점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유럽연합과 일본에서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이다. 오는 7월 중으로 일본 공정거래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심사를 발표한다. 대한항공 측은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의 합병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라 일본 공정거래위의 심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24일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본지에 “기업결합 심사 14개 지역 중 11곳이 승인했고 나머지 미국, 유럽연합, 일본이 남았는데 유럽연합과 일본은 긍정적”이라며 “문제는 미국"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면서 "미국에만 법률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1천만 달러 이상 투입한데다 2년간 5개팀으로 나눠 전 세계에 1억 달러 가량의 법률비용을 쏟아부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이 합병에 '올인'을 선언하고 우군인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플랜 B'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합병의 '키(Key)'를 쥔 연방 법무부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5일 조원태 회장은 “우리는 여기에 100%를 걸었고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20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양사의 합병 무산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부정적 기류를 의식한 것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조 회장은 미국의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지난 5월 12일, 미국을 방문해 리사 모나코(Lisa Monaco) 연방 법무부 차관을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12일, 미국을 방문한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아래 사진)을 면담한 리사 모나코(Lisa Monaco) 연방 법무부 차관(위 사진). 모나코 차관은 조 회장에게 대한항공의 미주노선 독과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한-미 노선 승객들 대부분은 한국인이란 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강력한 시정조치를 이미 부과한 점 ▲이번 통합이 한국정부의 항공 산업 구조조정에 의해 진행된 점 등을 내세워 연방 법무부를 설득하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연방 법무부는 지난 3월, 저가항공인 제트블루(JetBlue)와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의 합병을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한바 있다. 소장(訴狀)에서 법무부는 "제트블루와 스피릿항공의 합병이 미국 항공산업의 집중을 유발해 경쟁을 억누르고 항공료가 오르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연방 법무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양사의 합병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할 경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 항공사간 합병에 제동을 걸게된다.
그러나 법무부는 소송을 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 미국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합병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하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지하게 돼있다”며 “하지만 법무부는 소송도 하지 않고, 부정적인 입장만 유지한 채 시간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현재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블리자드(Blizzard Entertainment)의 합병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한항공 합병문제도 그 결과에 맞춰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방 법무부와 함께 반독점법 소송 권한을 갖고 있는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양사의 합병을 반대하는 반독점소송을 제기했으며 연방법원은 지난 14일 "두 회사의 합병 추진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과 관련한 연방 법무부의 태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미국 측 우려를 해소해주지 못한 만큼, 합병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가 기업결합 심사를 늦추고 있는 건 결국 대한항공이 독과점 해소 우려를 해소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도 미국의 눈치를 보고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양사의 기업결합 2단계 심사 기한을 7월에서 8월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분위기와 달리 연방 법무부가 대한항공에게 독과점 우려를 전달한 채 일단 승인해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국과 미국간에는 항공자유화(오픈스카이) 협정이 체결돼 있어 미국 항공사들도 마음만 먹으면 한미 노선을 운영할 수 있지만, 수익성이 낮아 취항을 강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까닭이다.
결국 현재로선 대한항공이 연방 법무부 등 미국정부를 상대로 더욱 강력한 로비를 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윤병진 기자 • 서울=최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