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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규 기자의 세상읽기> 뉴욕일원 카지노에서 한국 가수들의 공연이 사라진 이유
  • 임종규 편집인 겸 선임기자
  • 등록 2022-12-20 08:09:12
  • 수정 2023-01-02 08: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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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뉴욕특파원의 한 방

 

 



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최근에 이민 온 한인들은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80, 90년대 뉴욕 일원 카지노들에서는 한국 유명가수들의 공연이 성행했습니다지금 기억나는 가수만 해도 나훈아송대관패티김김수희심수봉, 주현미, 태진아 씨 등이 떠오릅니다


19985월에는 뉴욕한인회(당시 회장 신만우)가 청와대와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당시 위원장 김광진)에 호소문을 보내 카지노 공연의 근절을 요청 할 정도였습니다당시 뉴욕한인회는 호소문에서 뉴욕 인근의 도박도시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호텔 13곳이 수년전부터 주말마다 한국 1급 연예인들의 공연을 유치하고 뉴욕동포 수백~수천 명씩을 리무진버스로 데리고 가 무료 공연관람을 시킨 뒤 도박장 출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한인회는 이 때문에 가정파탄이 속출하고 있다공연을 보러 갔다가 도박에 빠진 동포들이 심한 경우 재산을 날리고 거지생활을 하는가 하면여성들은 도박비 마련을 위해 매춘행위를 하는 경우까지 있어 동포단체들이 도박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출연 연예인들 중 일부는 호텔 측이 지급한 출연료를 도박장에서 날리고 거액의 빚까지 진 채 귀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이후 2018년, 한국의 발라드 가수 이현우, 김정민, 조성모, 김동욱 씨  4명이 애틀랜시티 모 카지노에서 합동 공연을 펼친 적이 있었으나 흥행에 있어 별다른 재미를 못 봤다고 합니다. 이제는 한국 가수들의 카지노 공연을 바라보는 뉴욕 일원 동포들의 시선이 싸늘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동포 위문공연이라는 명목의 이들 공연은 거액의 공연장 사용료와 가수들의 숙박료포스터 제작비신문 광고료 등을 호텔 쪽에서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열렸습니다공연은 대개 한인이 운영하는 기획사들이 카지노 호텔 쪽과 계약을 맺은 뒤 한국 가수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열렸습니다


호텔 측은 한인들이 구입한 입장료숙박비, 교통비를 공연장에 도착하면 돌려주는 등의 선심을 쓰며 손님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카지노로 유도했습니다. 한국 가수들이 공연하는 날은 카지노 수입이 하루에 1백만 달러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저도 당시 모 일간지에 근무하며 몇 차례 기사를 썼지만 한국 가수들의 카지노 공연은 좀처럼 근절 되질 않았습니다한마디로 한인사회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시절이었습니다.



 

뉴욕한인사회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한국 가수들의 카지노 공연이 LA에서는 아직도 성행 중이다. 위쪽 사진은 오는 2월 18일 LA인근 P 카지노에서 공연을 갖는 인순이 씨. 아래 사진은 2018년 4월 P 카지노에서 공연을 연 백지영 씨의 모습.




욕한인회가 호소문을 발표하고 얼마 후의 일입니다지금이나 그때나 당대(當代최고의 가수인 나훈아 씨가 뉴욕 인근 모 카지노에서 공연을 한다는 광고가 신문지상을 도배했습니다어느 날 뉴욕에 주재하는 KBS 특파원이 제게 전화를 해 왔습니다정확히 말해 영상촬영(카메라기자가 연락을 해 왔습니다.


임형나훈아가 코네티컷에 위치한 OOOO카지노에서 공연을 한다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확실하지요?”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났으니까 확실합니다그런데 왜 그러세요?”

우리가 이번에 거사(巨事)를 치르려고 합니다

무슨 거사요?”

두고 보면 압니다나중에 기사나 잘 써줘요


그 때는 지금과 다르게 한국에서 온 특파원들과 저 같은 로컬(Local) 기자들이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취재현장에서 자주 만나 농담도 주고받던 때이니 KBS 기자가 부담 없이 제게 전화를 걸어 올 수 있었던 겁니다그 기자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어느 날, KBS 9시뉴스에 한국 가수들의 미국 카지노 공연 문제점과 나훈아 공연을 몰래 촬영한 영상이 등장했습니다


대대적인 뉴스를 KBS가 터뜨린 것이었습니다뉴스보도의 반향(反響)은 대단했습니다. 한국정부가 나서서 카지노 공연의 근절을 촉구했으며 연예계는 자정(自淨)을 약속했습니다KBS 뉴스 한방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한국 가수들의 카지노 공연이 일시에 중단됐습니다지금과 다르게 그 때는 ‘KBS의 힘이 대단했습니다며칠 후 취재현장에서 제게 전화했던 KBS 기자를 만나 카지노 공연 취재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카지노와 공연장에서의 촬영이 금지 됐을 텐데 어떻게 촬영 했어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카지노 경비원이 저희 기자 일행을 수상하게 여겼는지 졸졸 따라 다니더군요

그런데요?”

제가 개인 돈으로 몰래카메라(초소형카메라)를 구입했기에 가능 했지요

그거 무척 비쌀 텐데요?”

거금 15백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대단합니다하기야 TV뉴스는 신문과 다르게 그림이 없으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겠어요?”

그렇지요

덕분에 한인사회의 앓던 이가 하나 빠진 것 같아요. 수고했습니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저희도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 KBS는 지금과 달리 한국과 미주한인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방송사 였다.



희가 웃으며 취재 현장의 뒷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한 쪽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바로 카지노 공연 기획자들이었습니다하루아침에 생업(生業)이 날라 갔기 때문입니다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공연기획사(K프로덕션)를 운영했던 김모 씨의 상실감은 대단했습니다.


모든 카지노에서 한국 가수의 공연이 중단되자 그는 경제적으로 무척 힘든 상황에 빠졌습니다이후 그는 건강식품을 팔러 다니기도 했습니다경제적으로 곤궁(困窮)하자 부부싸움도 잦았다고 합니다이혼 얘기도 오갔다고 합니다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었나 봅니다.


어느 날 김 씨의 부인이 동네 델리 그로서리에 물건을 사러갔다가 거스름돈 1달러로 복권을 샀는데 그게 덜컥 당첨이 되고 말았습니다정확한 당첨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금을 빼고 4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그날 이후 김 씨는 한인사회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번 칼럼을 쓰기 위해 김 씨의 이후 행적을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당첨금으로 맨해튼에 청과상을 차렸다가 망해 1백만 달러를 손해 봤다는 얘기도 들렸고, LA로 가서 사업을 하다 잘 안 돼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김 씨를 만나 예전 잘 나가던 시절을 기록하고 싶습니다그의 과거 역시 한인사회의 역사이니까요기자(記者)란 직업이 결국 조선시대 사관(史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KBS 뉴욕 특파원들의 한 방’ 덕분에 한국 가수들의 카지노 공연은 사라지고 많은 동포들의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뉴욕 일원에 카지노가 많지만 평범한 동포들이야 갈 일이 그리 많지를 않습니다가더라도 슬롯머신이나 몇 시간 하다 오지 예전처럼 하루 밤에 몇 천몇 만 달러를 날리고 오는 사람은 많지를 않습니다.


카지노들도 이 같은 점을 알아 이제는 한인언론에 광고도 하지 않습니다대신 노름을 좋아하는 중국인 사회를 대대적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적지 않은 한인들이 노름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나고 사업체를 날렸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뉴저지의 치과의사 변호사 맨해튼 식당업주 L, K 퀸즈의 개인사업자 O, N, C 씨를 비롯 제가 최근 전해들은 주요 사례만도 10건이 넘습니다

코로나 사태 전 한인사회에서는 골프 광풍(狂風)이 불고 있었습니다한인 골퍼들의 80% 이상은 내기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기 골프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이를 한방에 만회하려고 카지노를 찾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도박중독은 마약중독과 증세가 비슷합니다끊기가 무척 힘듭니다상황이 이럴진대 한인사회에서는 각종 중독치료나 상담기관을 찾기도 힘듭니다.


새해에는 카지노 중독내기 골프 중독에서 벗어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족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과거 우리사회는 동족들의 노름중독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습니다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음지에서 고통 받는 한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일요일에 평소 다니던 교회나 절에도 안 가고 조용히 사라진다면 한번 의심을 해보기 바랍니다담배마약도박의 해악(害惡)은 초기에 막아야 합니다부디 2023년 새해는 각종 중독에서 벗어나는 건강한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25년 전 KBS 뉴욕특파원들의 노고(勞苦)가 생각나는 정초(正初)입니다.


편집인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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