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비화> 김선남 前 뉴욕경협 회장 별세는 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가 원인일까?
  • 임종규 기자
  • 등록 2023-02-28 11:08:55
기사수정

 "반기문·황교안·고건 같은 관료 출신들은 맷집이 약해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2017년 1월 3일 부인 유순택 씨와 함께10년간 거주했던 맨해튼의 사무총장 관저를 떠나며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좌 청룡 우 백호'으로 불렸던 오영준 씨(위 사진)와 김선남 씨(아래 오른쪽 사진). 오영준, 김선남 씨는 뉴욕 출신 김혁규 전 경남지사(전 뉴욕한인경제인협회장)와 박지원 전 국정원장(전 뉴욕한인회장)만큼 뉴욕한인사회에서는 유명인물이었다.




반 총장의 좌(청룡(

백호로 불린 오영준과 김선남 


 

12대 뉴욕한인경제인협회장(전 썬월드컨설팅그룹 회장)을 역임한 김선남 씨가 지난 2021년 722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그가 1944년생이니까 만 77세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백세시대인 요즈음 김 씨의 타계(他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게 한다그와 친했던 전직 단체장들은 80세를 넘기고도 아직 건강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살아생전 김선남 씨는 동갑내기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2007년∼2016·이하 반 총장)의 미국내 최측근이었다사실 반 총장에게는 김 씨 말고도 맨해튼 사무총장 공관을 수시로 드나 들 정도로 친한 집사 같은 최측근이 한명 더 있었다그 인물은 제 6기 뉴욕민주평통 회장을 역임한 오영준 씨(전 뉴욕한인수산인협회장)였다


오 씨는 지난 2016718일 당시 79(1937년생)의 나이로 스태튼아일랜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 직을 물러나기 불과 5개월여 전이었다오 씨는 야채과일 등을 구입해 공관으로 나를 정도로 반 총장과 막역한 사이였다


경호원들과 공관 근무자들에게도 가끔 비싸지 않은 선물을 줄 정도로 그는 반 총장 사람들과 두루 친했다그는 반 총장의 사적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때문에 경호원들이 오 씨만큼은 알아서 프리패스를 시켜줬다공적인 자리에서도 오 씨가 반 총장에게 다가가면 경호원들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과거 뉴욕 JFK 공항에서 기자는 이 같은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해외정상을 만나던 반 총장에게 오영준 씨가 불쑥 다가갔으나 오히려 경호원들이 길을 터줄 정도였다기자와 친분이 있던 오 씨는 기자가 농담 삼아 오 회장님! 반 총장 대통령 되면 한 자리 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는 정색을 하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나이 80에 욕심내면 큰일 나라고 대답했다


그는 정말 자리욕심은 없는 듯 보였다그저 반 총장과의 두터운 친분을 주변에 과시 할 뿐이었다오 씨가 반 총장의 대소사를 챙기는 집사 같은 존재였다면 김선남 씨는 친구이자 고문(顧問)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 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반 총장과 더욱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부인 신영자 씨 때문이었다


신 씨가 반 총장의 부인 유순택 씨와 충주여고 12회 동기동창인 까닭에 두 사람은 뉴욕에서 급속히 친해졌고덕분에 1944년 동갑내기 네 사람은 가족처럼 각별히 지낼 수 있었다유순택 씨는 충주여고에서 학생회장까지 지낼 정도로 리더십이 강했으며 동창생들 사이에서 유명인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렇듯 오영준-김선남 씨는 반 총장에게 있어 ()청룡()백호라 불릴 정도로 미국의 최측근 인맥이었다.



       제12대 뉴욕한인경제인협회장으로 활동 할 당시의 김선남 씨 모습(오른쪽에서 두번째•1989년 사진).




반 총장오영준 씨 세상 떠나고

김선남 씨에게 더욱 의지 ••• 

김 씨사적인 조언도 서슴지 않아


 

오영준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반 총장은 친구이자 조력자인 김선남 씨에게 더욱 의지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씨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그는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이민 초기 그는 뉴욕에서 기념품을 주로 취급하는 사업체를 운영했다뉴욕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상대로 부동산 중개업도 함께 했다.


김 씨는 뉴욕에서의 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1989~1990년 뉴욕 한인경제인협회장과 한미교류협회 상임이사 등을 맡아 활동했다이때 김 씨는 김영삼 대통령(당시 야당 총재)은 물론이고 김덕룡 전 의원과도 교분을 쌓았다이렇게 김 씨는 YS계에 편입돼 정치권 인사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반 총장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반 총장은 주미한국대사관 참사관 겸 총영사로 미국 근무를 했고귀국 후에는 미주국장을 맡아 미주 한인단체장들과 잦은 만남을 갖곤 했다정치성향이 보수우파인 김 씨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책특보를 맡으며 이명박 정권 탄생에도 일조(一助)를 했다이후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꾸준히 친분을 맺고 지냈다.


당시 서울에서 기자와 만난 김 씨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인근 JW메리어트호텔 대표이사를 거쳐 평이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김 씨 부부는 거처를 호텔 방에 마련해 놓고 숙식을 호텔에서 해결하고 있었다현재 메리어트호텔은 통일교 소유지만 당시만 해도 율산그룹(회장 신선호)이 대주주였다.


호텔리어로 변신한 연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신선호 회장과 친분이 있었는데 어렵게 투자자를 연결해 주고 호텔지분을 받았다고 말했다이때 김 씨는 상당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이후 호텔이 통일교에 매각되면서 지분을 팔고 뉴욕으로 돌아 온 그는 식품업체 등에 대한 투자사업을 하며 한편으로는 반 총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김 씨와 반 총장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두 사람의 부인이 충주여고 동기동창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이다김 씨의 부인 신 씨와 반 총장 부인 유 씨는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격의 없이 지낸 사이로 알려져 있다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두 부부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반 총장 입장에서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고 여기에 동갑내기 김선남 씨는 안성맞춤이었다휴일이면 부부동반 골프를 치고 등산을 함께했다반 총장 부부는 일정이 없는 날 김 씨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도 자주 했다김 씨는 반 전 총장의 외교관 후배들이 하지 못하는 사적 조언도 서슴없이 했다.


김선남 씨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재임하는 동안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반  총장의 측근과 정치권 인사들을 두루 접촉한 바 있다당시 한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 씨가 한국 정치동향을 파악하고 반 총장의 향후 행보를 지원하기 위해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실제 201610한국을 방문한 김 씨는 현역의원 여럿을 만나 정국현안을 듣기도 했다당시 김 씨를 만난 한 국회의원은 지인의 소개로 김선남 씨를 만나 정국 흐름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바 있다면서 혹시 오해를 살까봐 이런 얘기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반 총장 주변의 외교관들 중에는 사업가인 김 씨의 이런 행보를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반 총장은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서 김 씨에게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다가 오히려 김 씨가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무안해 한 적도 있다당시 한국 반 총장 캠프의 좌장 격이었던 김숙 전 유엔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선남 씨는 사적으로 총장께 조언을 하는 친구 같은 존재다반 총장도 김선남 씨를 잘 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171김 씨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나는 반 총장 주변에 있는 사람일 뿐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기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를 알고지낸지가 30년 가까이 된데다 수십 차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는 파악 할 능력이 기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담배도 안하던 김선남 씨,

폐암으로 별세 ••• 반 총장의 대권

도전 포기 후 상실감 너무 커


 

김선남 씨는 살아생전 기자와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아마 한국과 미국에서 기자만큼 그를 많이 만난 언론인은 없을 것이다따라서 기자는 그의 생각을 너무나 잘 읽고 있었다그는 국회의원 처럼 정치를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반 총장이 대통령이 돼 한 자리 준다면 마다 할 사람은 아니었다그렇다고 그가 '명예욕이 있는 사람이었다'란 뜻은 아니다


한 자리 주면 받고아니면 말고’ 기자가 읽은 그의 속내였다아무튼 김 씨는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인생 말년을 모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김 씨의 설득과 마당발 전략에 다수의 뉴욕뉴저지 전현직 단체장이 그를 따랐다.

미주한인사회의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 작업은 모두 그의 주도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간의 유엔사무총장 직을 마친 반기문 총장이 뉴욕생활을 정리하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2017112일 한국으로 귀국했다하루 전인 11일에는 김선남 씨가 먼저 한국으로 날아갔다한국행 며칠 전 만난 김 씨는 기자에게 제일 먼저 한국에 '반기문 후원회'를 만들 계획이라면서 이후 미주후원회뉴욕후원회 등 차례대로 창립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뉴욕의 C, Y, K 회장 등도 모두 서울행사에 참석 할 것이라면서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자신감을 내보였다그러나 이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불과 20일 만인 21, 반 총장이 갑작스럽게 대권 도전 포기선언을 했기 때문이다그의 대선 불출마 이유에 대해선 인터넷만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기에 이 지면에서는 따로 명기(明記)하지 않겠다


반 총장은 불출마 사실을 김 씨에게 조차 미리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불출마 선언 며칠 전 기자가 만난 뉴욕의 전직 직능단체장이자 김 씨의 측근인 씨는 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내일 모레 한국에 가서 김선남 씨를 만날 계획이라면서 반 총장이 이번에 틀림없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씨가 기자에게 이 말을 한 후 정확히 나흘 후 반 총장은 대권도전을 포기했다한국에 가서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김선남 씨의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반 총장에 대한 배신감과 울분창피함자책자존심 하락 등 모든 실망감이 몰려 왔을 것이다당시 김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참 후 미국으로 돌아 온 김 씨는 기자와의 만남도 거절했다기자와 김 씨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주로 카톡과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2017년 봄김 씨를 만났던 전직 단체장 씨는 한 마디로 김 씨가 넋이 나가 있었다면서 당시 김 씨 마음에는 반 총장에 대한 원망창피함자존심 상함이 가득 차 있는 듯 했다고 말했다.


씨는 내가 김 씨에게 건강 걱정을 할 정도였다면서 반 총장의 불출마 선언이후 김선남 씨는 한인사회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그는 반 총장의 불출마 선언이후 1년이 지나서야 기자를 만났다기자가 김 씨에게 당시 상황을 묻기에는 그의 낯빛이 너무 어두웠다


김 씨는 기자에게 한숨을 쉬며 이런 말을 했다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들이 정치를 해야 됩니다황교안이나 고건이나 반기문 같은 관료 출신들은 맷집이 약해요한여름 밤의 헛된 꿈이었어요모두 다 내 운명이죠요즘 교회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이후 몸이 안 좋고가슴의 통증을 느꼈던 김선남 씨는 병원에서 폐암이란 진단을 받았다종양제거 수술에 들어 간 의료진은 김 씨의 가슴을 열었다가 그냥 닫았다폐암 4기로 손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전문의에 따르면 폐암 4기 생존율은 약 10% 미만으로 수술이 거의 불가능하다.


항암치료를 통해 일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항암제 효과가 떨어지면서 내성이 생겨 결과적으로 낮은 생존율을 보이게 된다결국 반기문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김 씨는 2021년 7그렇게 생을 마감했다반 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후 46개월 만이었다.


김 씨의 별세를 두고 전직 뉴욕한인경제인협회 관계자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위암이나 폐암이 스트레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들 하는데, 의학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김 회장이 반 총장의 대선 불출마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만큼은 사실이다평소 건강하고 술담배도 안하던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에 대해 반 총장은 어떻게 생각할까여러모로 착잡한 마음이 든다대통령이 뭔지... 권력이 뭔지... 인생의 무상함만 깨달을 뿐이다


임종규 선임기자

 




1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