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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 대통령 영부인을 협박한 뉴욕 한인여성(1탄)
  • 임종규 선임기자
  • 등록 2024-09-12 1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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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금은방 업주, 김윤옥 여사에게 “20억원 내놔라” 요구 ••• 청와대,

경찰청 특수수사대에 수사 지시했지만 사건 터질까봐 전전긍긍






                    MBC의 선동방송에 의해 시작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의 모습.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또 다른 이유로 떨고 있었다.



지난 2008년 봄부터 여름까지 대한민국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휩싸여 있었다. 한마디로 광풍(狂風)이었다. 광우병 촛불시위는 이해 5월 2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이후 3개월넘게 지속됐다. 


이 시위는 표면적으로는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들의 모임으로 출발한 평화로운 집회였다. 첫 집회 때는 구성원의 60% 이상이 여고생들이었을 정도 였다. 이후 1백일 이상 집회가 계속되면서 쟁점이 교육 문제,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반대, 정권퇴진 등으로 확대 변질됐다.


시위가 정치적으로 확대 변질된 이유는 MBC의 과장보도와 함께 좌파세력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부터 이다. 여기에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와 무기력함이 시위 확산을 더욱 부채질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 기자는 한국을 방문, 마침 MBC 'PD수첩' 제작진을 만나고 있었다. 탈북자들을 돕는 D선교회의 문제점과 비리를 어떻게 보도 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제작진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에 본부를 두고 워싱턴에 지부를 둔 D선교회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주한인사회에서도 탈북자를 돕자며 후원금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단체 대표 C목사는 공금횡령과 유용은 물론이고 탈북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 성추행을 하고 있는 정황이 기자에게 포착된 상태였다. 

이해 4월 어느 날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던 'PD수첩'의 이(李)모 PD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묘한 말을 했다. 


“다음 주 'PD수첩'이 방송되면 세상은 난리가 나고, 아마 대한민국은 딴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핵폭탄과 같은 파괴력을 가진 큰 건이 하나 터집니다. 두고 보세요. 아마도 이명박 정권이 혼비백산 할 겁니다”


기자는 이 PD의 이 같은 발언을 반신반의 하며 서울을 떠나 뉴욕으로 돌아왔다.

기자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을 무렵, 이명박 대통령과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4월 15일부터 19일까지 4박 5일간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뉴욕은 15일, 16일 양일간 방문해 반기문 유엔총장 등을 만난 후 동포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 간 직후,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셈이다. 방영 후 폭동과 같은 시위는 5월 들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질 못했다. 거리는 수십만의 시위대가 몰려나와 혼란과 혼동의 상황을 연출했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땅에 떨어졌고 마치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했다. 


초기 시위진압과 대응에 실패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즈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시위대가 부르는‘아침이슬’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참으로 바보 같은 발언을 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이명박을 지지하며 대선에서 표를 몰아 준 보수층 유권자들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동시에 자아내게 만들었다.




                    2008년 5월 22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국가비상사태에서 그가 보여준 언행은 지도자로서의 위신과 권위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대통령의 무기력함을 알아 버린 시위대는 더욱 신이 나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기자는 뉴욕에서 언론을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보며 이모 PD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다. 오랫동안 언론계 생활을 한 기자였지만 허위과장 보도에 대한 무서움에 밤잠을 설쳐 댔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사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뉴욕에서는 또 다른 불길이 정권을 향해 다가 가고 있었다. 


2008년 5월, 취재차 뉴욕시 플러싱을 찾았던 기자는 퀸즈 베이사이드에서 보석상을 경영하던 이순례(당시 50세)씨를 우연히 만났다. 평소 안면이 있던 이 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날 이 씨는 기자에게 놀라운 얘기를 했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3천만원 상당의 고급핸드백을 뇌물성 선물로 전달했다면서 이 같은 사실을 한국의 좌파언론인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제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기자의 충격은 무척이나 컸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터지면 가뜩이나 광우병사태로 위기에 몰려있는 이명박 정권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 씨에게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다음은 기자와 이 씨 사이에 나눈 대화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언제 김 여사에게 핸드백을 전달했나.

▲ 이명박 대통령(당시 예비후보)이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난 직후이다.


– 무슨 이유로 김 여사에게 핸드백을 건넸나.

▲ 표면적으로는 선물이었으나 뇌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의 지인 주모 씨와 함께 파주영어마을과 같은 타운을 조성하고 싶었다. 나중에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 여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로비를 할 계획이었다.


– 어떤 종류의 핸드백인가.

▲ 3천만원 상당의 명품‘에르메스’가방이다.


– 당신이 핸드백을 직접 구입해서 전달했나.

▲ 아니다. 그 핸드백은 우리 금은방에 온 손님이 귀금속을 구입한 후 물건 값 대신 지불한 것이다.


– 김 여사와는 평소부터 알고 지냈나. 어떻게 김 여사를 알게 됐나.

▲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는 김용걸 성공회신부(뉴욕 거주)의 소개로 알게 됐다. 김 신부의 소개로 김 여사와 두 차례 만남을 가졌다.


    


                                            김윤옥 여사에게 수천만원 짜리 뇌뭏성 명품 가방을 전달한 이순례 씨.




– 어디서 누구와 함께 김 여사를 만났나.

▲ 처음에는 서울에서 열린 기독교 종교행사에서 김 여사를 알게 됐고 두 번째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내 도림 중식당에서 김 신부, 주 씨와 함께 김 여사를 만났다.


– 핸드백은 누구를 통해 언제 전달했나.

▲ 두 번째 만남에서 김 신부를 거쳐 전했다.


– 김 여사가 받는 것을 직접 봤나.

▲ 그렇다.


– 김 여사 입장에서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왜 9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 하려하는가.

▲ (한참 생각을 하다가) 솔직히 섭섭해서 이다.


– 무엇이 섭섭한가.

▲ 난 솔직히 김 여사에게 좋은 인상을 가졌고 김 여사를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영어마을 건립 건을 떠나 3천만원 짜리 핸드백을 선물 한 것이다. 김 여사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김 여사는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고 해 놓고는 그 이후로 간접적인 연락조차 한번 없었다. 난 솔직히 지난 4월 뉴욕방문 때는 비서를 통해서라도 연락이 올 줄 알았다. 본인이 직접 전화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비서를 통해 전화 한 통이나 메모 정도는 연락이 올 줄 알았다. 내가 바보라서 고가(高價)의 핸드백을 전했겠는가. 난 김 여사와 친분을 쌓고 싶었을 뿐이다. 영어마을 건립 청탁은 나중 문제이다.


– 당신의 말은 확인 할 필요가 있지만 향후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것인가.

▲ 한국에 가서 좌파언론인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려한다. 대통령 영부인이 고급 핸드백을 뇌물로 받았다고 하면 그들은 신이 나서 기사를 쓸 것이다. 가뜩이나 광우병 사태로 이명박 정권이 골치 아플 텐데 이 폭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 아니다. 나는 단지 김윤옥 여사의 해명편지라도 한통 받으면 화가 조금 풀릴 것 같다.


– 내게만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당신이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 측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 내가 어떤 역할을 해주기 바라나. 지금 얘기를 기사화 시키길 바라나.

▲ 내 말을 이명박 대통령 사람들에게 전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영업이 안 돼 가게도 정리 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다.




이순례 씨가 김윤옥 여사를 만나 뇌물성 명품가방을 전달한 서울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桃林)의 내부 모습. 전망 좋은 37층에 위치한 이 식당은 12개의 별실을 보유하고 있어 유명인사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 후로도 이 씨와는 그녀가 경영하는 금은방에서 서너 차례 만남을 더 가졌다.

그러나 기자는 이 씨와 만남을 가질수록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씨가 가방을 미끼를 돈을 원하는 듯 한 뉘앙스를 계속 풍겼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돈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여사가 BBK 사건을 해결하면서 수십억원을 썼다는 소문이 있다”, “이번 사건이 잘 해결되면 임 기자에게도 충분히 사례 하겠다” 등 처음에는 돈에 관심 없다던 그녀가 만날 때마다 돈 얘기를 했다.


돈을 원하고 있다고 눈치 챈 기자는 한나라당의 당시 실세였던 A 의원과 B 의원 측에 연락을 했다. 그들은 친이명박계 의원들이었다. 그들로 부터 곧 연락이 왔다. 그들은 기자에게“ 어렵더라도 한국으로 즉시 나와 달라”는 연락을 해 왔다. 


이 씨에게는 “한국출장 가는 길에 당신 뜻을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에게 전하겠다”고 말을 한 후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그쪽은 비상상황이었다. 광우병 사태의 충격이 큰 상태에서 뉴욕으로부터 가방사건이 전해졌으니 그들의 당혹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경기 영어마을 파주캠프>의 모습. 이 씨는 이 같은 영어마을 조성을 위한 로비의 전초전으로 명품 가방을 김 여사에게 전달 했다고 밝혔다.



기자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그들은 기자에게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절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얘기가 전해지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알면 부부간에 큰 문제가 생기고 다칠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지금 이 시국에서 이 건이 터져 나가면 대통령 부부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받습니다. 임 기자님이 꼭 좀 도와주세요” 그들은 기자에게 정말 간절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김 여사가 받은 가방은 이미 이순례 씨에게 

 돌려줬다아마 배달사고가 생긴듯 하다



대통령 측근들은 기자가 한국에 머무는 열흘 동안 모든 상황을 파악해 김 여사 쪽 입장을 중간 브리핑해 줬다. 다음은 당시 A 의원이 김윤옥 여사를 대신해 기자에게 전해 준 말이다. 

“김 여사는 2007년 10월 또 다른 가방사건으로 인해 크게 홍역을 치른바 있다. 

당시 송영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해 10월 23일 경기도 수원 중부지방국세청에서 열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 중 '1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가방을 소지할 정도의 사람이 월 1만 5천원의 건강보험료를 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늘색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있는 김윤옥 여사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 일로 인해 이명박 후보 부부는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커다란 비난을 받는 등 큰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나중에 이 가방은 사위가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파문은 막았지만 이 일로 대통령 부부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뉴욕의 이순례 씨로 부터 받은 가방은 이 사건 직후 김용걸 성공회 신부(뉴욕거주)를 통해 돌려줬다. 그러니까 2007년 10월말이나 11월초에 돌려줬다고 보면 된다. 아마 중간에 배달사고가 생긴 것 같다”




                    2007년 10월 당시 통합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김윤옥 여사가 들고 다니던 명품 가방을 문제 삼고 있다.




당시 송 의원은 가방의 시중가격을 1천 80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송 의원이 문제 삼은 가방보다 뉴욕의 이 씨가 김 여사에게 전달한 가방은 비슷한 모델이었지만 가격이 더 비쌌다. 모델은 유사했으나 사위가 선물했다는 가방은 하늘색이었고, 이 씨가 건넨 가방은 주황색이었다.

송영길 의원이 밝힌 이 가방의 시중 판매가격은 1천 80만원. 반면 이 씨가 김 여사에게 전한 가방 가격은 기자가 서울 강남 매장에서 알아 본 결과 1천6백만원 이었다. 
결국 이 씨는 가방의 가격이 3천만원이라고 기자에게 허풍을 치며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의 이런 언행은 나중에 스스로를 사기 피의자로 인도하는 계기가 됐다. 이 씨가 김 여사에게 전달한 에르메스 버킨백은 김 여사 외에도 영화배우 심은하 씨,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씨 등 유명인들이 들고 다니는 최고가의 제품이었다.


이 가방은 수작업으로 1년에 4천∼7천개만 생산 판매되는 까닭에 구매 희망자들은 1년∼4년을 기다렸다가 가방을 구입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3천만원이든 1천6백만원짜리든 일국의 대통령 후보 부인이 뇌물성 선물을 받은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2008년 현재에는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었기에 문제가 더 컸다. 


김 여사가 받은 ‘에르메스’제품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로 세계 각국의 부호들이 선호 하는 고가의 가방으로 잘 알려졌다. 배달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한 이명박 측근들은 문제의 김 신부에게 원망을 쏟아내며 그를 비난했다. 무슨 연유로 김 신부가 가방을 이 씨에게 돌려주지 않고 갖고 있었을까. 이로서 가방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섰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김 신부가 자신의 부인에게 이 가방을 선물하기 위해 가방을 가로챘다”며 김 신부를 의심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만난 김 신부는 기자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가방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가방 배달사고를  일으킨 김용걸 성공회 신부(뉴욕).




김 신부는 “나중에 뉴욕에서 이순례 씨를 만나면 가방을 전해주려고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신부의 이 같은 주장은 신빙성이 없었다. 김 여사가 가방을 돌려 준 후 9개월 동안 몇 차례에 걸려 김 신부는 뉴욕에서 이 씨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김 신부는 이 씨에게 김 여사로부터 가방을 돌려받았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분명히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뉴욕으로 돌아 온 기자는 이 씨를 만나 김윤옥 여사가 돌려 준 가방을 김 신부가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도 이 말에 놀라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도 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과 손해는 크다. 이에 대해 김 여사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 돈을 달라는 얘기였다. 당초 대통령 측근들은 이 씨에게 가방을 돌려주는 선에서 이번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돈 얘기가 나오자 그들은 난감해 했다.


“일국의 대통령 영부인이 어떻게 이런 일에 돈을 내놓나. 말도 안 된다.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자”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대통령 측근들은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들의 제안은 이랬다. “가방을 돌려주고 위로금으로 2천만원을 주겠다”


하지만 이 제안을 기자로 부터 전해들은 이 씨는 흥분해서 길길이 날 뛰었다. “누구를 거지로 아느냐. 2천만원 갖고 해결될 일이면 처음부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당장 한국으로 나가 기자회견을 하겠다” 이 씨의 이런 반응을 전해들은 대통령 측근들은 기자에게 급히 한국으로 다시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할 말을 전화로 하자고 했지만 그들은 정보기관의 감청(監聽)을 걱정했다. 결국 기자는 또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기자는 이번 서울방문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을 마무리 져야겠다고 결심했다. 중간에서 피곤해서 못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기자의 뜻대로 되질 않았다.


솔직히 광우병 사태 와중에 이 사건이 기사화 되는 것은 기자도 원치 않았다. 자칫 잘 못하면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이미지가 크게 추락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양측의 입장대립은 이후에도 기자로 하여금 몇 차례 더 서울과 뉴욕을 왕복하게 만들었다.


당시 기자는 뭔가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 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쩌다가 중간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게 됐을까” 정신적 피곤함에 지친 기자는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 씨는 정확하게 액수를 말하지 않았지만 억단위의 돈을 요구하고 있는 듯 했다. 


기자가 “얼마를 요구하냐”고 물어도 그녀는 정확한 액수에 대해선 대답을 하질 않았다.

대통령 측근들은 액수가 커지면 자신들이 해결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다며 불안해 했다. 그러다 마침내 결론을 내리는 순간이 왔다.


임종규 선임기자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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