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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대중 뉴욕 비자금 출처, 드디어 드러났다(1탄)
  • 임종규 선임기자
  • 등록 2024-09-12 12: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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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성 前 국정원 차장, “DJ 청와대 지시 받고 6개 은행 동원해 3천억 조성” 증언 •••
  • 국정원 간부, 이미 2006년 본지에 “비자금 3천억 만들어 뉴욕으로 보내졌다” 제보




                                          2003년 2월14일 대북송금 관련 대국민기자회견에서 눈을 감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무일푼이었던 이모 씨가 거액의

김대중 비자금 관리인이란

사실을 알고 기자는 경악했다


 

지난 2006년 초기자의 정보망에는 이상한 상황이 포착됐다뉴욕 한인사회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괴자금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기자는 이모 씨(1962년생·시민권자·당시 뉴욕 그레이트넥 거주)의 언행에 신경을 집중 했다그는 과거 친형과 함께 C전자상을 운영하던 사람으로 당시에는 파산상태 였다그런 사람이 갑자기 부동산 개발업체 S그룹을 만들어 뉴욕일원 부동산을 마구 매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뉴욕 한인타운 곳곳에 '열린공간(Open Center)'이란 것을 만들어 동포들에게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었다평소 행사나 모임 장소를 빌리는데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던 한인단체들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그를 칭송했다.

또 그는 한인회장애인협회를 비롯한 각 기관 및 단체에 후원금 전달을 아끼지 않았다이 씨에게 후원금을 받았거나 경제적 신세를 조금이라도 진 단체장들은 그의 편이 되어 그를 칭찬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당시 뉴욕한인회장 이모 씨플러싱한인회장 김모 씨동포권익단체 대표 박모 씨장애인단체 대표 이모()씨 등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이 씨의 재산형성 과정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돈이 없어 주변 사람에게 20 달러를 빌려 달라 하고낡은 중고차를 몰고 다니던 그가 어떻게 거부(巨富)가 됐을까기자는 그에 대한 의혹과 의심을 멈출 수가 없다.


미국에서 갑자기 거부가 되려면 복권(Lotto)에 맞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기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는 2002년 당시 기자가 재직 중인 뉴욕조선일보(당시 사장 김교종)를 매입하려 시도한 적도 있었다그는 언론사까지 수중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그렇다면 그가 떼돈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무렵 또는 이전이란 얘기였다.


기자가 한참 이 씨 취재에 열을 올리던 중 월간조선에 기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기사가 하나 게재됐다.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비자금을 측근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회장이 빼돌려 LA로 보냈고 이 돈이 뉴욕으로도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이 돈의 관리인은 LA 거주 오모 씨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보고 기자는 이 씨가 운용하는 돈이 이익치 비자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 방향으로 취재에 열을 올렸다본지에 '이익치 비자금일지도 모른다'는 기사도 게재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나간 후 충격적인 제보가 기자에게 몇 건 전해졌다.

그건 이익치 비자금이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사망.이하 김대중)의 비자금이란 내용이었다제보내용에 대해 의심을 해 볼만 했지만 먼저 제보자 3명의 신원이 믿을만한 했다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제보자 중 한 사람은 문제의 이모 씨 측근이었다


정확히 말해 이 씨가 대표로 있던 S부동산 개발업체의 전직 임원이었다또 다른 제보자는 이 씨와 공동으로 자금을 관리하는 또 다른 이모 씨(시민권자·당시 뉴욕시 포레스트 힐 거주)의 전직 부하직원 이었다3번째 제보자는 이들과 공동으로 비자금을 관리하던 홍모 씨(당시 영주권자·뉴저지 포트리 거주측근이었다.


세 사람의 제보자 중 전직 태권도 사범이었던 양모(당시 코네티컷)씨의 증언내용은 충격적이었다. 1989년 도미(渡美)한 양 씨는 한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경찰들을 대상으로 사범생활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 온 후 양 씨는 뉴욕에서 건축업에 종사해 왔다양 씨는 수년 간 비자금이 담긴 돈 가방을 자신이 직접 날랐다고 증언했다또 그는 이 씨와 홍 씨 등이 플러싱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씨와 회의하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고 밝혔다.


양 씨 등의 증언내용이 기자의 상상이상 이었기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내용을 기자가 단독으로 취재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이에 기자는 고민 끝에 기자가 대표으로 있는 시민단체인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이하 정실련)'에 협조를 구했다이후 정실련 관계자들은 양 씨를 수차례 만나 그의 증언을 녹취했다.



                   제보자 양 씨는 김대중 비자금이 담긴 돈 가방을 3년 반 동안 내가 직접 날랐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2006년 당시 양 씨의 증언내용 중 일부이다.


― 미국에 온 지 얼마나 됐나.

19892월에 미국으로 왔으며현재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뉴욕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다 1992년부터 건축공사 일을 해왔다』


― 현재 직업은 무엇인가.

『이모 씨가 운영하는 건설 및 부동산 관련 회사 「××콘스트럭션(Construction)」에서 2000~2004년 상반기까지 근무했다주로 운전도 하고 돈이 담긴 가방(007가방)을 직접 날랐다. 2001년 무렵 집중적으로 운반했다』


― 심부름을 하고 얼마나 받았나.

『한번 가방을 나를 때 마다 3천 달러에서 적게는 1천 달러 정도씩 받았다현금과는 별도로 양주 몇 병씩을 받기도 했다』


― 얼마나 자주 그런 심부름을 했나.

『한 달에 두세 번 정도였다』


― 가방을 전달할 때 상대를 어떻게 알아봤나.

『「미스터 리」를 찾으면 됐다이 일을 할 때는 항상 양복을 입어야 했다그래서 회사(××콘스트럭션)에서 양복을 몇 벌 사주었다』


― 가방을 운반하는 일은 얼마 동안 했나.

3년 반 동안 했다횟수로는 20번 정도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정재계 인사들의 사진 13장을 보여주며이 사진들 중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9명의 이름을 거론하며모두 본 적이 있다재계인사가 이수동 씨(김대중의 측근이며 전 아태재단 상임위원), 김홍업 씨(김대중의 둘째 아들)와 동행하는 것을 봤다이수동 씨와 김홍업 씨는 술집에 있었고, (재계인사가술집에서 김 씨를 픽업하는 것을 봤다』


(신원 미상의 남자 사진을 보여 주며)이 사람을 본 적이 있나.

2003년 이 씨(××콘스트럭션 대표)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봤다그리고 조 씨(S부동산개발업체 부사장이자 김대중 수행비서 조모 씨의 친형)와 홍 씨(김대중 비자금 공동관리인·R부동산개발업체 대표)의 차에서 내리는 것도 서너 번 목격했다플러싱 노던 블러바드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세 번 봤다시간은 아침 6시쯤 이었다』


― 비자금 관리인 겸 행동대장 격인 이 씨(S부동산개발업체 대표)는 어디에서 봤나.

『이 씨가 김홍업 씨를 만날 때 봤다』


― 이 씨의 부하직원(부사장)인 조 씨(김대중 비서 조모 씨의 친형)는 몇 번이나 가방을 전했나.

『맨해튼에서 한 번 정도 가방을 전달하는 것을 봤고맥도날드 앞에서 세 번 정도 봤다』


― 가방을 운반한 장소는 주로 어디인가.

『플러싱 맥도날드 앞에서 78맨해튼 뉴욕곰탕식당 앞에서 두 번식당 안에서 한 번 등이다』


― 운전도 여러 번 했다고 하는데.

50번 정도 했다한번은 차이나타운 바워리(Bowery) 스트리트에 가서 차 보닛(Bonnet)을 열어 놓고 차 안에 있으라고 했다다른 차들도 있었다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조금 뒤 여러 명이 나타나서 나에게 가방이 실린 차는 놔두고 다른 차를 타고 가라며 택시비 명목으로 8백 달러를 줬다돈을 가져간 사람들은 모습이나 말투가 북한사람들로 보였다』


―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나.

『돈이 들어 있기도 하고서류가 들어 있기도 했다서류가 들어 있는 가방과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은 다르다』


― 가방을 운반한 시각은 주로 언제인가.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8시 이후에 움직인다』


―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나.

『태권도 도장을 운영했다형사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도 했다한국의 인천경찰서에서 1년 정도군부대에서 2년 정도 태권도를 가르쳤다』


― 가방에 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한번은 회사(××콘스트럭션사무실에서 다른 사람이 가방을 여는데돈이 들어 있었다』


― 심부름을 할 때마다 수천 달러씩 받았다고 했는데운반지역이 모두 맨해튼 인근이었다가까운 거리의 심부름을 했는데왜 그렇게 많은 사례비를 받았나.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무척 겁이 났다봉급도 한 달에 12천 달러(주급 3천 달러)씩이나 받았다』


― 그런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었나.

『무서워서 더는 일을 못 하겠더라그리고 아내가 「겁이 난다」며 「그만두라」고 성화였다』〉  



       3년 6개월 동안 비자금이 담긴 돈 가방을 배달한 양모 씨는 007 가방 하나에 1백만 달러를 담아 북한인 등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비자금 3천억 원, 1백여 페이퍼 컴퍼니’ 통해

뉴욕 유입 ... 부시 대통령도 보고서 받아 봐


 

 기자와 ‹정실련›은 김대중 비자금 유입사건을 6개월 가까이 공동취재 했다.

우리가 조사한 김대중 비자금은 약 3억 달러(당시 한화 약 3천억 원)에 달했다이 돈은 1백여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미국에 들어왔다.

김대중 측근들은 이 돈을 부동산 매입 등에 사용했으며 일부는 뉴욕에서 북한인들에게 전달됐다이 돈으로 비자금 관리인 중 한 사람인 이모 씨(S업체 대표)3백만 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했으며회사 차량까지 포함 12대의 차를 구입했다.


이 사건을 조사했던 ‹정실련›의 한 관계자는 무일푼이었던 이 씨가 한인사회에서 설치고 다니지 않았다면 임종규 기자가 이번 사건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씨 형제는 김대중 정권의 실세였던 박모 씨와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안다우리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박 씨가 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실련은 이후 7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겸 고발장을 만들어 백악관국무부연방의회연방검찰 등에 발송했다.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한 후 워싱턴DC를 방문해 연방의원들 앞에서 사건내용을 증언했다당시 부시 대통령이 우리가 보낸 보고서를 받아봤다는 연락도 받았다.

이 무렵 부시 대통령은 이런 연설을 했다.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검은 돈(비자금)은 해당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이 미국의 정의이다


뉴욕시 플러싱(150-24 노던블러바드)에 위치한 옛 서울플라자 건물(이후 코리아빌리지로 명칭변경). 김대중의 뉴욕 측근들은 이 건물을 조총련과 같은 친북단체 본부로 만들려 했다. 이 건물은 현재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 소유로 되어있다.



다음은 기자가 대표로 있는 ‹정실련›이 작성해 백악관 등에 보낸 「김대중 정권 비자금 뉴욕 유입 조사 보고서」 중 양 씨 증언 관련부분이다보고서는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작성됐다.


1. 발단


● 20062월 뉴욕市 플러싱에 거주하는 양모 씨(건축업자)가 자신이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이상한 일을 경험했다』며 정실련에 제보전화로 이야기를 듣던 정실련 임원이 제보내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표에게 보고정실련 측은 제보내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해 「조사팀」을 구성한 후 양 씨와 접촉.


2. 조사내용 중 중요부분


(1) 1차 조사


•일시 및 장소: 2006214일 오후 1뉴욕시 베이사이드 소재 한 주택

•양 씨의 주요 발언 내용


2001년 뉴욕에 거주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들인 이○○홍○○이○○김 회장(당시에는 신원을 모름등이 수차례 한인타운 외곽 롱아일랜드 등지에서 모임을 갖는 것을 목격함.


― 나는 이○○홍○○ 밑에서 건축공사 등의 일을 맡아 하는 정식직원이었음.


― 모임이 있기 전 이○○과 홍○○은 『VIP를 위한 경호원을 구해 보라』며 『한 사람은 김회장을 위해또 한 사람은 이○○씨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함.


― 이에 따라 나는 김 회장을 위해 무술유단자 A씨를 채용함이○○을 위한 경호원은 마땅한 사람이 없어 구하지 않음.


― 문제의 김 회장은 4인이 회의할 때만 차(운전기사가 딸린 검은색 벤츠500)에서 내리고 다른 때에는 차에서 내리는 법이 없었음앞좌석에는 늘 운전기사와 경호원이 동승함.


(2) 2차 조사


•일시 및 장소: 2006220일 오후 1뉴욕시 플러싱 소재 모()업소 주차장 내승용차 안

•양 씨의 주요 발언 내용


― 나는 맨해튼뉴저지 등지에서 사무실이 위치한 플러싱으로 007가방(돈가방 1회에 100만 달러 가량)을 수도 없이 날랐음.


― 처음에는 돈 가방 인줄 몰랐음궁금하여 이○○에게 『무슨 가방이냐』고 물어보니이○○은 『돈을 벌게 해주는 서류가 들어 있는 가방』이라고 대답함.


― 한번은 돈 가방을 나르고 우연히 사무실을 들여다봤는데 100달러 뭉치가 가방 안에 가득 들어 있었음.


― 돈 가방을 펼쳐놓고서 앞서 말한 4인이 회의하는 모습도 목격함.


― 특히 2001년에는 돈 가방을 수도 없이 날랐음.


― 나는 2004년 중반까지 이 일을 했음.


― 돈 가방을 한번 나르면 2000~ 3000달러를 받았음.


― 나는 주급이 3000달러로서 월급이 12000달러인데 여기에다 가외로 돈을 더 준 것임.


― 그들이 말하는 과정에서 그 자리에 있던 김 회장이 누구인지 알게 됐음그러나 지금은 말 못 하겠음.


― 이○○은 내게 늘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며 보안을 요구함.


             



(3) 3차 조사


•일시 및 장소: 2006223일 오후 4. 2차 장소와 동일

•양 씨의 주요 발언 내용


― 조사팀이 『당신의 발언을 녹음하자』고 제안하자 양 씨는 거부했음.


― 그러나 조사팀의 계속되는 설득에 마지못해 녹음에 응함.


5분여 녹음 후 두려움 때문인지 더 이상의 녹음을 거부함이에 조사팀도 녹음을 포기함.


― 조사팀이 『솔직히 말해 달라김 회장이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니양 씨는 『미국에서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다닐 만한 한국 VIP가 누구겠느냐』고 대답함.


― 조사팀이 『그럼 우리가 추정한 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 씨인가』라고 묻자양 씨는 큰 결심을 한 듯 『그렇다』며 『이 진술에는 변함이 없고 나중에 재판에 가더라도 그대로 증언 하겠다』고 말함.


― 조사팀이 『당신의 진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알고 있나』라고 묻자양 씨는 『알고 있다』고 대답함.


(4) 4차 조사


•일시 및 장소: 2006225일 오후 4. 1차 조사 장소와 동일.

•양 씨의 주요 발언 내용


― 양 씨는 『그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내가 과거에 한국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신원조사를 다 했다내가 경찰생활을 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며 두려움을 나타냄.


― 양 씨가 『다른 일(건축)이 생기면 해도 되느냐』고 묻자이○○(양 씨가 다니던 회사사장)은 『우리 일만 해야 한다그러려면 그만둬라』고 했다 함.


― 돈 가방 배달을 그만둔 이유는 아내가 너무 무서워했음. 36개월 동안 새벽이고 밤이고 불려 다니는 내 모습을 보고 매우 불안해했음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김대중 측 사람들로 하여금 위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함}


임종규 선임기자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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