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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칼럼] 미국의 전당포(Pawn Shop) 문화 김재동 칼럼니스트 2024-06-27 12:32:52

     미국의 전당포 '폰샵'의 모습.   



도심은 물론 상권이 형성된 거리라면, 미국 어디를 가도 ‘폰샵(Pawn Shop)’ 이란 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Pawn Shop, 바로 전당포다. 


전당포 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의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그 장면이다.


법을 공부하는 가난한 법대생 라스콜리니코프(로디)는 같은 동네 전당포 노파를 손도끼로 살해하고 나오는 길에, 그 노파의 여동생과 마주친다. 그녀마저 죽이고 로디는 전당포를 태연하게 빠져나온다. <죄와 벌>의 전체 내용과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작품 평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 뇌리에 각인된 전당포의 이미지가 그러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오기 전, 서울 거리에서 전당포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당구장 옆 골목길이라든지, 어느 허름한 건물 2층에 주로 전당포가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당시, 미국의 전당포(Pawn Shop)는, 대로변에 그것도 몇 블록 안에, 두세 개는 족히 있을 정도로 성업하고 있었다. 


그때는 사실 Pawn Shop이 총기류 등 각종 중고 물건을 파는 곳이겠거니 생각했었다.다. Pawn Shop이 값비싼 물건이나 자동차 소유권 증서(Certificate of Title) 같은 것을 맡기고 돈을 융통하고, 수수료를 받고 물건을 대신 팔아주기도 하며, 고가의 물건을 싼 가격에 매입하는, 전당포라는 것을 안 것은, 내가 미국에 온 지 수년이 지난 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당포는 <죄와 벌>에서 그 노파가 행했던 고리대금업이나, 어둡고 부정적인 악행이 벌어지는 곳쯤으로 생각했었다. 내 기억 속의 전당포는 9시 뉴스나 범죄 수사물에 자주 등장했던 것 같다. 사복형사들이 그곳에서 용의자를 체포하는 장면 말이다. 


전당포는 어두운 뒷골목의 범죄와 연관된 장물(贓物)을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떳떳하지 못한 곳쯤으로 여겼었다. 그러고 보니 7, 80년대 서울의 전당포 주변 모습이, 흡사 <죄와 벌>에 묘사된 것과 거의 같았다는 것이 놀랍다. 소설 속에서도 노파의 전당포 근처에 당구장이 등장한다.


사실 전당포(典當鋪)는 법적으로 물건을 저당잡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우리나라 전당포의 유래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초기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 시대 전반을 정리, 편찬한 역사서 <고려사> ‘공민왕’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가 쌀을 빌려주고 터무니없는 이자를 받아내려 하자, 가난한 사람이 이를 갚지 못하고, 그 대신 자녀를 저당 잡히는 일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폰샵'의 모습.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박장 인근에 전당포가 많다. 



조선말, 상업과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토지 사유화가 이루어지면서 동산이나 부동산을 저당 물로 잡는 대부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당포 또는 전당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를 업으로 삼는 이가 생긴 것은 개항 후의 일이다. 이는 일제 수탈의 상처와 맥이 닿아 있다. 식민지 수탈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조선토지조사사업’이 전당 업의 기반이 되었다. 


당시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점포를 운영하면서 전당포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그 밑자락을 깔아주는 일에 앞장섰던 것이다. 서양에서의 전당포(대부업)는 중세 유럽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잦은 전쟁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전염병, 기아 등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도사들이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준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근대사회로 진입하기 전까지는 전통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을 악덕으로 여겼다. 하지만 당시 대부업은 가난한 서민계층은 물론, 전쟁 자금이 필요했던 왕이나 건축을 위한 교회에도 없어서는 안 될 업종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업을 하는 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로 여겼으며, <죄와 벌> 같은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묘사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살점 1파운드를 떼어가겠다는 조건으로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준다. 현대인들은, 절차상 시간이 걸리는 은행을 통해 돈을 빌릴 수 없는 급한 상황에 직면할 때, 결국 사채나 전당포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형태가 어떠하든, 전당포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찾아가 돈을 빌리는 대부업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허름한 옛 서울 거리의 전당포들도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애환이 숨겨진 곳이기도 하다. 또 전당포는 서민경제를 읽어내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당포는 음성적이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로, 전당포 역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하며 여전히 성업 중이다. 저당 잡히는 물건과 종류가 다양해 졌을 뿐 전당포는 여전히 현대인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공존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전당포에서 노트북컴퓨터가 인기 있는 품목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명품 바람을 타고 ‘명품 전당포’가 청담동 등 서울 강남 일대에서 성업 중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전당포는 한 걸음 앞서 기업화되고 있다. 최대 전당포 체인, Cash America Pawn과 First cash Pawn 등의 기업형 전당포가 뉴욕증시에 상장되기도 했다. 각주별로 크고 작은 전당포 체인이 생겨나고 있으며, 필자가 거주하는 유타주에도 Check City 체인이 성업 중이다. 


진화된 기업형 전당포는 전통방식에서 탈피, 집, 자동차, 땅, 보험, 유가증권 등의 문서를 주로 담보해 거래한다. 물론 전통방식의 전당포도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기치 않게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전당포는 특히 서민들에게 필요불가결한 업종이 아닐까?


과거의 전당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처럼 불법적인 고리대금업을 한 것도 사실이다. 21세기 전당포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꾀하며 진화 중이다. 미래의 전당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글쓴이 김재동 소개 /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거주작가한국문인협회 회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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