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내 탈북민들에 대한 강제북송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7월 31일 오후 서울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기독일보〉
가족 모두가 불교 신자라서 그런지 어릴 적 뛰놀던 광주광역시 양림동 일대에 선교사들이 세운 광주기독병원, 수피아여고와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에 별 감흥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강압적 선교 방식과 보수적인 정치적 태도에 부정적 인식이 더 컸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보니 소화기내과 수련을 받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입사했다.
그런데 입사자 전부 원목실장과 면담하라는 것이 아닌가. 대학교 채플 수업도 아니고 다 큰 직장인한테 목사 면담이라니.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가 봤다. 원목실장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세브란스병원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박은식 선생님. 이 조그만 기와집이 의료 선교사인 알렌이 권력자 민영익을 치료해주고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세운 제중원입니다. 이후 세브란스씨께서 거금을 기부해 주셔서 지금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요. 세브란스씨께서 저희 말고도 개발도상국 여러 곳에 기부했는데,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직 대한민국의 세브란스병원만이 기부자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었지요. 세브란스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 예수께서 행하신 ‘밀알 한 알이 황금빛 밀밭이 되고 물방울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기적의 순간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말씀을 듣고 선교 역사에 관심이 생긴 나는 퇴근하는 길에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에 들렀다. 2대 제중원 원장인 헤론은 테네시의과대학을 수석 졸업해 교수직이 보장됐음에도 조선에 온 뒤 1년 동안 1만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다 34세에 이질에 걸려 사망했다. 3대 제중원 원장인 빈턴은 부인과 세 자녀를 조선 땅에서 잃었다.
그 옆에는 이름도 없이 ‘infant(젖먹이)’라고만 적은 묘비가 수십 기 있다. 열악한 조선의 위생 상태와 의료 시설 탓에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죽은 선교사 자녀들의 묘비였던 것이다. 배우자와 어린 자녀들을 먼저 보내며 선교사들이 느꼈을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의 깊이에 숙연해지다 눈물이 났다.

예수를 서양 귀신이라며 피하던 조선인들은 아픈 이들을 몸 바쳐 치료하는 선교사들에게 마음을 열었고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였다. 지독한 가난과 노예 생활이 당연한 줄 알았던 조선인들은 그렇게 인권에 눈을 떴다. 구시대적 신분 질서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은 배재학당 등을 세워 이승만 같은 걸출한 정치인들을 키워내고 엄혹한 시기에 미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도움을 받게 연결해주어 대한민국 건국에 크게 기여했다. 번영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선교사들을 비롯, 앞선 이들의 헌신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 나는 정치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 정당만을 지지하는 고향의 현실을 바꿔 보고자 시민 단체에서 활동했다. 올해 6월, 탈북 작가 지현아씨를 초청해 북한 인권에 대해 강연을 진행했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북한으로 송환되지 못한 중국 내 탈북자 2000명이 곧 모두 강제 송환되어 고문, 강제 노동, 성폭력에 시달리고 총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현아 작가가 속한 북한 인권 단체가 전국의 중국 영사관에서 강제 송환 반대 시위를 하는데, 다른 지역과 달리 광주에서만 참여자가 없어 매번 1인 시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도시보다 더욱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어야 할 광주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게다가 호남은 유진 벨 같은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의 열정적 활동으로 수많은 학교와 병원이 들어서며 주민을 감동시켜 개신교 신자 비율이 22%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는 경상도(대구·경북 12%, 부산·울산·경남 6%)에 비해 약 2배나 되는 수치다. 개신교의 핵심 교리는 결국 인권이고 이것이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발전에 사상적 바탕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호남의 개신교인이 북한에 한마디를 못 한단 말인가. 햇볕 정책은 틀렸다.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실태, 그리고 대한민국을 겨눈 핵무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안타까운 마음에 강연을 마치고 어릴 적 뛰놀던 양림동에 들렀다. 고풍스러운 선교사 사택 주위로 세련된 카페와 맛집이 생겨 시민들이 자유롭게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일상을 북한 주민도 누릴 수 있도록 자유와 번영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선교사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길 아닐까? 호남의 많은 개신교인이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모태 불교 신자인 나도 거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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