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은 일본차를 선호하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한국차를 안 탄다”
현대 엑셀은 1986년 미국에 첫 상륙했다.
1987년, 뉴저지에서부터
뉴욕시 퀸즈까지 찾아가서
현대 ‘엑셀’을 구입했다
1986년 현대자동차가 ‘엑셀(Excel)’이란 이름을 달고 미국에 처음 상륙했습니다. 당시 한참 향수병(鄕愁病)에 젖어 있던 저는 감격에 겨워 87년, 엑셀(배기량 1500CC)을 구입했습니다. 가격은 1만 달러도 안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매이유는 불타는 애국심과 함께 차의 디자인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품질 따위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차를 구입하기 위해 제가 사는 뉴저지에서부터 현대자동차 딜러가 위치한 퀸즈 노던블러바드까지 찾아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뉴저지에는 현대차 딜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를 구입하고 너무 좋아 이곳저곳 마구 몰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새로운 디자인의 차를 보고 미국인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현대 엑셀보다 2천 달러 가량 더 싼 차가 있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수출한 ‘유고(Yugo : 배기량 1,100 ∼ 1,300 CC)’였습니다. 유고가 1977년부터 생산되고 1984년, 미국에 첫 수출을 시작했으니 엑셀보다는 소형차 부문에서 훨씬 선배였습니다. 엑셀은 ‘기분 나쁘게도’ 종종 유고와 비교가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엑셀이 미국시장에서 크게 히트를 치자 유고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애국심으로 타고 다닌 엑셀은 종종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간혹 잔고장이 있었습니다. 잔고장이 있을 때마다 반비례로 제 애국심도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제 애국심은 바닥을 드러냈고 몇 년 후 차를 폐차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애국심과 향수병으로 인해 구입한 ‘첫사랑’ 같은 한국차는 좋지 않은 기억 속에서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한때 현대 엑셀과 경쟁했던 유고 자동차. 엑셀의 히트로 인해 유고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첫사랑’ 엑셀에게 배신당한
나는 이후 25년 넘게 한국차를
구입해 본 적이 없다
이후 25년 넘게 한국차를 타지 않았습니다.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습니다. 주로 부품구입이 쉬운 미국차나 튼튼한 ‘볼보’ 같은 유럽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일제차는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일부터 피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DNA 속에 반일감정이 있다는 말이 있죠. 저는 이 말을 철저히 실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국자동차들이 미국에서 각종 상도 받고, 품질도 많이 좋아졌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현대’와 ‘기아’가 같은 회사란 사실도 이 무렵 알았습니다. 한국차가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옛날 ‘엑셀’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치 엑셀은 나를 배신하고 떠난 애인같은 자동차였습니다. 젊은 시절,저는 엑셀을 무척 사랑했었습니다.
솔직히 첫사랑의 안 좋은 추억 때문인지 한국차는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미웠던 첫사랑도 그리움으로 변하게 되나 봅니다. 주변에서 한국차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제게 할 무렵이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제가 일본차(토요타)를 구입하게 됐습니다. 100% 자의는 아니었습니다. 몇 년간 임시로 탈 요량 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차가 한 대 더 필요할 일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저의 쓸데없는 애국심이 또 발동했다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일본차를 구입해 마음이 찜찜한데, 이번에는 한국차를 리스(lease) 해보자” 그래서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중형 SUV 쏘렌토(3.3L)를 3년 간 타게 됐습니다.
한국차와 일본차를 한 대 씩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차를 비교하게 됐습니다.다. 한국차는 일본차에 비해 승차감도 뒤지지 않았고, 디자인도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나의 두 번째 사랑이었던 기아 쏘렌토.
▲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미러(View Mirror)’가 새 차를 탄 지 이틀 만에 떨어졌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딜러로 달려가 새로 ‘뷰미러’를 달아야만 했습니다.
▲ 새차의 외부공기 차단 버튼은 이미 고장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외부공기를 차단시켜도 조금 있으면 저절로 외부매연이 들어왔습니다.
▲ 또 헤드라이트를 켜면 내부 손잡이 부분 버튼에 불빛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것도 고장이 나 있었습니다.
▲ 후방 카메라는 토요타 차량에 비해 너무 어두워 밤에는 사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이 점을 딜러에 얘기했더니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별 것도 아닌데 그냥 타고 다니세요. 어차피 리스차 잖아요”
똑같은 문제가 일본차에서 발견됐다면 토요타 딜러 측도 같은 말을 했을까요?
▲ 이후 2주 만에 차량 바닥재(매트)가 찢어졌습니다. 제가 미국 와서 많은 차를 타봤지만 새 차의 바닥이 찢어진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 8개월 정도 지난 후 ‘브레이크 등(Brake Light)’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저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비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정비소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브레이크 등 커버(Cover)를 열 수가 없으니 딜러를 찾아 가세요”
이후 두 곳의 정비소를 더 찾아갔지만 같은 대답 뿐 이었습니다.
어떤 정비소 직원은 “아니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벤츠도 아니고 기아자동차 주제에 브레이크 라이트 하나도 정비소에서 교체 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습니다.
‘브레이크 등’ 하나를 교체하기 위해 예약을 하고 딜러를 찾아갔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전구 하나를 교체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고 기가 막혔습니다. ‘차가 겉만 번지르르 하면 다 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아차를 반납하기 며칠 전에
차 시동을 걸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왼쪽)과 정의선 회장.
이후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룹의 실세인 정의선 회장에게 쓰려했지만 그래도 정몽구란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정 회장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존경하는 정몽구 회장님께’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정 회장이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간곡하게 일본차에 뒤지지 않는 좋은 차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아마 팔순의 정 명예회장(1938년생)이 편지를 직접 보지는 않았겠죠. 편지를 보낸 후 보름 정도 있다가 ‘현대자동차 아메리카’의 한국인 직원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한국본사로부터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했지만 제 의견에 대한 감사의 말만큼은 분명히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그냥 마음이 짠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일본차를 앞지를 수 있을까요? 아니 언제쯤이면 일본차 수준 정도는 될까요? 언제쯤이면 일본사람들이 한국차를 타게 될까요? 여러분은 미국에서 한국차를 타는 일본인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한국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자동차 회사 직원들 보다 일도 적게 하면서 봉급을 많이 받아가는 한국의 귀족노조 사람들을 너무 미워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현대-기아 자동차 임원들도 너무 미워합니다. 이런 것이 싫어 해외공장을 많이 세운다하지만 미국사람들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생산된 현대, 기아차도 한국차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해외공장 제품이라 해도 한국제품이란 굴레는 벗을 수 없는 법입니다. 쏘렌토를 딜러에 반납하기 1주일 전, 차 상태가 이상했습니다.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납 사흘을 앞두고 차는 완전히 퍼져버렸습니다.
즉시 AAA 정비사를 불렀습니다. 두 시간 만에 나타난 미국인 정비사는 차를 이리 저리 살피더니 “밧데리는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밧데리를 연결하는 부품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일단 시동은 걸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차는 시동이 걸렸습니다. 저는 시동이 걸린 차를 그대로 몰고 딜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차를 반납해 버렸습니다. 사흘 더 타려다 고생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기 때문입니다.
리스 차를 반납하고 고지서가
날라 왔다 ••• “모두가 내 잘 못”
차를 반납하고 나니 속이 엄청 후련했습니다. 그런데 후련한 마음도 잠시 뿐, 일주일 후 기아자동차로부터 고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기아자동차를 새로 리스 하지 않고, 타던 차를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4백여 달러의 위약금을 내야 한답니다. 10여장의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영업사원의 말만 믿고 서류에 서명한 내 잘 못이었습니다.
당초 기아자동차 매니저와 영업사원은 몇 차례에 걸쳐 “한 달에 한 번 씩 페이먼트만 하면 더 이상 돈 낼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20분도 안 되는 시간에 10여장의 영문 계약서를 꼼꼼히 다 읽을 정도의 영어실력을 못 갖춘 저는 바보일 뿐입니다.
이렇게 첫사랑 ‘엑셀’ 이후 25년 만에 만난 두 번째 사랑 ‘쏘렌토’도 마음의 상처만 남긴 채 떠났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세 번째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장담 할 수가 없네요. 저는 오늘도 잔고장 하나 없는 일본차를 열심히 타고 다닙니다. 저는 솔직히 이 차가 한국산 차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일본차를 타고 싶어서 타겠습니까?
정의선 회장부터 시작해서 말단 귀족노조까지 정말 정신 차리고 좋은 차를 만들어 주길 당부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한국인들이 일본차를 타듯이, 일본인들도 한국차를 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점이 너무 약 오릅니다.
일본 차량이 장악한 미국 택시업계부터 도전해 보기 바랍니다. 부디 한국자동차 업계 종사자들에게 '좋은 서비스와 헝그리 정신'이 깃들길 기대해 봅니다. 제발 분발 해주기 바랍니다. 제게 세 번째 사랑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임종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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