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주 장군, 망명성 미국 도피 중 ••• 김용휴·조홍 장군은 기소중지 상태서 사망
문재인 정권 때 미국 도피한 조현천 장군은 윤석열 정권 들어선 후 한국으로 자진 귀국 ...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 중
미국에 망명성 도피중인 한성주 예비역 공군소장의 경우
한국에서는 ‘땅굴 장군’으로 잘 알려진 한성주 예비역 공군소장(69·공사 24기·땅굴안보연합회 대표)은 지난 2018년 9월 24일 미국으로 망명성 도피를 해왔다.그가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공개적으로 “문재인은 간첩이다. 김정은이를 제거 할 때 함께 제거해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 씨는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현 대통령)은 문재인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현역시절의 한성주 장군. 그는 현재 미국 망명을 추진 중이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이해 9월 중순, 한 장군에게 출두명령을 내렸다. 그를 구속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를 눈치 챈 그는 며칠 뒤 미국으로 도피해왔다.한 씨가 구속여건을 갖추게 된 것은 당시 그가 집행유예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국 국방부는 지난 2014년 11월,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남한에 다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한성주 씨를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했다.
당시 국방부는 조모 국방정보본부장(중장) 명의의 고소장에서 “‘여적(與敵)의 장군들-필자의 무고인가, 저들의 여적인가?’의 저자인 피고소인이 ‘땅굴 여적(與敵)의 3인방’ 중 한명으로 고소인을 기재하고 ‘땅굴은 없다’고 아메바같이 외치는 조 본부장은 어린애만 못한 전략가다’고 적어 고소인을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10월 12일 모 교회에서 ‘육군이 90년대부터 땅굴이 없다고 한 것을 보호하는 국방부장관과 고소인을 여적의 장군이니 목을 베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썼다’고 강연해 허위 사실을 적시해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북한의 남침 땅굴 강연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자 지난 달 27일 입장자료를 내어 “1982년부터 20여억원을 투입해 김포, 연천, 포천 등 민원이 제기된 21개 지역에서 5백90여 곳을 탐사했으나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 “근거 없는 주장으로 군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반면 한성주 씨 등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다수 존재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현재 청와대로 최소 84개의 땅굴망이 인입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북한이 땅굴을 파기 위해 대형자동굴착기계(TBM) 3백여 대를 도입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방부의 고소에 대한 최종판결은 2017년 11월에 나왔다. 결과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또한 한 씨는 국방부 고소사건 와중에 ‘박지원(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간첩’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었다.
이 또한 박지원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해 2018년 7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한 씨가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출두 통보를 받았으니 구속이 명약관화(明若觀火)했다. 현재 한 씨는 뉴욕, 뉴저지, 워싱턴 등지를 오가며 강연활동 등에 열심이다.
억울하게 쿠데타 모의 누명 쓴 조현천 예비역 육군 중장의 경우
조현천 예비역 중장(64·육사 38기·전 국군기무사령관)처럼 억울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그에게 뒤집어씌운 범죄혐의는 반란모의. 한국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실 그가 쿠데타를 모의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만약의 (촛불시위 확대에 따른) 소요사태에 대비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한 사람이다.
조 씨는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고 3개월이 지난 2017년 12월 미국으로 온 후 계엄령 문건의 작성한 혐의와 관련하여 군검 합동수사단에 “미국에서 개인적인 신상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귀국해서 수사를 받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미국 도피 였다.
과거 미주한인 좌파단체인 북미주포럼과 한국의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조 씨에 대해 현상금 1만 달러를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에서 윤석열로 정권이 바뀌자 그에 대한 평가와 법적용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조 씨는 현재 귀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2022년 9월 14일 변호인(미국)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기무사령부가 작성하였던 계엄문건과 관련하여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이 최근 검찰에 고발되고 계엄문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며 "계엄문건 작성의 최고 책임자인 나는 계엄문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자진 귀국하여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무사령부는 간판을 내리고 문재인 정권내내 '국군안보지원사령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윤석열 정부들어 안보지원사령부는 '국군방첩사령부'로 또다시 이름을 교체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미국으로 도피 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조현천 예비역 중장(전 국군기무사령관).
기무사령부를 해체로 몰고 간 결정적 사건은 이른바 ‘계엄(령) 문건’ 폭로였다. 문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 측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탱크·특전사 병력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무력 진압하고 방송과 국회를 장악하는 작전 실행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당시 군 수뇌부와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해당 문건에 대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 검토한 문건”이라며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탄핵 기각에 대비해 작성한 실제 작전 실행 계획”이라며 ‘내란 음모’ ‘친위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서로 동떨어진 해석이 붙은 이 문건을 두고 청와대의 최초 판단(2018년 3월 중순경)은 ‘문제없음’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인 7월 6일 군인권센터가 이 문건을 입수해 ‘촛불 진압 쿠데타 음모’라고 포장하자 청와대는 입장을 바꿨다. 2018년 7월을 기점으로 기무사는 해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게 됐다.
계엄 문건이 작성된 경위는 이렇다.
〈2017년 2월 17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은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령과 관련한 내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실행 작전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계엄령이 발동된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담은 검토 보고서였다.
2월 18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기우진 기무사 5처장(당시 수사단장, 육군 준장)을 책임자로 지정해 계엄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이를 위해 사령부에 ‘미래 방첩 업무 발전 방안 TF’(인원 11명)를 만들었다. 3월 2일 기우진 수사단장은 조 사령관에게 중간보고(2월 23일)에 이어 최종안을 보고했다.
3월 3일 조 사령관은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을 한 장관에게 보고했다. 한 장관은 조 사령관에게 “문건을 작성하느라 고생했다, 사안을 종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기우진 처장은 조 사령관에게 ‘(공을 들여 만들었으니) 추후 을지훈련에 참고하도록 존안(보존, 비밀 등록)하자’고 건의했고 조 사령관도 이에 동의했다.〉
한 장관이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에 ‘사인(결재)’을 했다면 이 문건은 ‘계엄 실행 계획’이 된다. 하지만 한 장관은 보고만 받았을 뿐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는 계엄 문건이 단순 검토 보고서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좌파진영은 '가짜뉴스'를 마구 퍼뜨리며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갔고, 조 씨를 '역적'으로 만들었다.
조 전 사령관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23년 3월 29일 한국으로 자진 귀국했다. 2024년 2월 2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만으로는 조직화된 폭동의 모의나 폭동 실행을 위한 의사합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에게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무혐의 처분했다.
다만 계엄령 검토 문건의 작성이 직무 밖의 위헌적 내용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혐의로 추가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23년째 도피 생활하다 2018년 사망한 조홍 예비역 육군 준장의 경우
85세의 나이로 지난 2018년 12월 11일 캐나다에서 사망한 조홍 씨(육사 13기·준장 예편)는 12.12 반란사건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헌병감(대령)이었다. 검찰 수사기록에 의하면, 조홍 씨는 1979년 12월 12일 합법적 지휘계통에 있던 육군본부 측 지휘관들의 격리와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12·12 당시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군사반란 당일 저녁 자신의 장군 진급 축하모임을 빙자해 서울 연희동의 한 요정으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 등을 유인해 1시간 이상 붙잡아두고 있었다.
정식 명령계통에 있던 이들 장성들을 부대로부터 떨어지게 해서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불법연행에 대응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는 같은 날 오후 11시쯤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수경사에 모여있던 육군본부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하고 이들을 전원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부하인 신윤희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중령)에게 하달해 실행토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23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사망한 조홍 씨와 1979년 12.12 군사반란의 성공을 축하하며 신군부 주역들이 국군보안사령부에 모여 기념촬영을 한 모습.
당시 수경사령관실로 진입한 헌병들에 의해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총상을 입었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문홍구 합참 대간첩대책본부장·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이 무장해제된 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반란의 시작과 끝에 모두 조홍 장군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직후 육군본부 헌병감에 올랐다가 1982년 준장으로 전역했다. 이후 재향군인회 사업국장과 도로교통안전협회 감사를 지냈고, 1983년부터 1989년까지 6년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검찰은 12.12 반란 당시 조 씨의 행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봤고,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기려 했지만 그가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기소중지했다.
만약 조 씨가 재판에 넘겨졌다면 유죄 선고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조 씨의 명령을 받고 육군본부 측 장성들을 불법 연행했던 신윤희 씨가 징역 4년형(항소심에서 3년 6월로 감형)을 선고받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직속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기망하고 체포하도록 명령했던 조 씨의 범행은 한층 더 무겁다고 볼 수 있다.
내란(반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12·12와 5·18 관련자 18명 12·12 반란 당시 20사단장이었던 박준병 씨 한 사람만 무죄를 선고받았을 뿐, 나머지 피고인 전원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씨처럼 검찰 수사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던 박희도·장기오씨의 경우도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있던 1998년 뒤늦게 귀국, 이듬해 7월 1심에서 군 형법상 반란지휘 혐의로 각각 징역 5년과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 조홍 씨는 기소중지 상태에서 사망 전까지 군인연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 그는 1996년 2월부터 소재 불명으로 한국 검찰에 의해 기소중지 된 상태였다. 문제는 기소중지 피의자가 군인연금을 받기 위해 매번 소재지를 국방부에 신고해 왔다는 것이다.
조 씨의 한 육사 동기는 2018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조 씨의 실질적인 거주지가 불분명하다”면서 “어떤 이들은 그가 캐나다에 산다고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조 씨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동기는 “아마 국방부가 갖고 있는 조 씨의 주소지는 연금수령을 위한 지인의 주소지일 가능성이 컸다”며 “그는 한국을 떠나 올 때부터 이미 귀국을 포기한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뉴저지 포트리에 거주하다 사망한 김용휴 예비역 육군 중장의 경우
살아생전 김용휴 씨의 모습. 그는 1990년 미국 도피 후 한번도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채 2022년 9월 뉴저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2018년 촬영 사진›
지난 9월 20일 96세(1926년생)의 나이로 사망한 김용휴 예비역 육군 중장 역시 기소중지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뉴저지 포트리 한인타운에 위치한 505 노인아파트에 오랫동안 거주해 이 지역에서는 유명인물이었다.
김 씨는 육군사관학교 7기생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인물이다. 이후 사단장, 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을 지낸 후 중장으로 예편하였으며, 제18대 국방부 차관(1978년 10월 6일~1979년 12월 14일), 제 17대 총무처 장관(1979년 12월 14일 ~ 1982년 5월 20일) 등을 지냈다.
김 씨는 군 시절 국방부 군수국장,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육군군수사령관을 거치면서 육군의 ‘군수통’으로 유명했다. 그는 주월한국군사령부 부사령관, 25사단장, 6군단장 등 비교적 요직을 두루 거친 덕장(德將)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지금도 그를 따르는 후배군인들이 적지 않다.
김 씨는 군 시절 자신의 꿈은 ‘육사 교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78년 군문을 떠났다. 그러나 김 씨에게도 ‘흑(黑)역사’는 있다. 김 씨가 국방부 차관으로 재임 중이던 1979년, 10·26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재빨리 신군부 세력의 수장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손잡았다. 이 같은 인연으로 12·12 사태 직후 신군부 세력은 김 씨를 총무처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1982년까지 총무처 장관을 지내며 공무원 숙정과 기구축소 개편작업을 주도 했다. 장관을 그만둔 후 김 씨는 청소년연맹 초대 총재로 임명되었으며, 84년에는 농업개발공사 이사장으로 잠시 있다가 1985년 비료 등 농업자재 생산업체인 남해화학(국영기업)사장을 지냈다.
뉴욕, 뉴저지 한인 노인사회에서 김 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성품이나 인간성에 대한 평판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그는 군 시절 덕장이었다는 평가에 어울리게 개인적 성품에 대해선 호평(好評)을 받고 있었다.생전 그에게 깍듯이 경례를 하는 한인들(주로 월남전 참전 군인들)도 적지 않다. 한인사회에서 그는 원로 대접을 받고 살았다.
다만 그가 과거 전두환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점에 대해선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특히 10.26 직후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한직(閒職)인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전출 보내려한다는 계획을 전두환에게 알린 사람이 김용휴 씨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정보는 당시 신군부가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또한 그는 남해화학 사장 재직 시절 아들의 빚보증을 섰다가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자 1990년 8월, 미국으로 도피 해왔다. 이 같은 사실은 그에게 있어 숨기고 싶은 과거였다.
김용휴 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직후 보도된 신문기사.
지난 10월 7일 뉴저지동산교회에서 열린 '주월한국군 부사령관 김용휴 장군 추모식'에는 뉴욕·뉴저지 향군단체와 보수단체 관계자 1백여명이 참석했다.
몇 년 전 본지는 김용휴 씨와 관련된 기사를 보도 한 적이 있었다.
이 기사를 보고 김 씨는 지인(전직 뉴저지한인단체장)을 통해 기자에게 “억울한 내용이 있다”란 말을 전해왔다. 이에 기자는 “억울한 것이 무엇인가. 충분히 기사화 시켜주겠다”라고 답변했다. 기자는 김 씨의 지인에게 “기자의 말을 김용휴 씨에게 꼭 전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그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가 억울하다는 부분이 12.12와 관련된 부분인지, 미국으로 도피해 온 과정인지 알 길이 없다. 당시 기자는 〈‘역사를 바로 잡을 부분이 있다’면 김용휴 씨의 시간이 더 가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언론에 해주길 기대한다. 언론인은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자 노력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이다〉라고 본지에 썼다.
그러나 그는 끝내 대답이 없었고, 김 씨의 시간은 모두 지나가고 말았다.
임종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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